[사설] 북, 대화에 바로 나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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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남북 양쪽이 교착국면에 빠진 당국간 대화와 접촉을 재개하려는 움직임과 기미를 보이고 있다. 대화국면의 재개에 도움이 될 이런 동향이 남북 당국간 물밑접촉에 의해서, 아니면 남북이 비슷한 시기에 교착상태의 타개 필요성을 인식해 각기 취한 조처로 이뤄진 것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어떤 경우든 김대중 대통령과 대북정책을 깊이 조율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2월 방한을 앞둔 시점에 드러나는 이런 현상은 한반도 정세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정부는 어제 야당과 보수진영의 반대 속에도 금강산 관광의 존속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북쪽도 봄에 열리는 아리랑축전을 참관할 남쪽 사람들을 위해 금강산~원산~평양의 육로를 개방할 의사를 밝힌 데 이어 그제 당국간 대화의 재개를 시사하는 '정부.정당.단체 합동회의'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북쪽은 또 부시 대통령의 방한 시기에 역대 주한 미국 대사들을 평양에 초청, 대미 대화 의지도 드러냈다. 남북이 모두 상호 운신을 어느 정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한 듯한 흔적이 묻어나고 있다.

북쪽이 호소문에서 남북 당국 및 민간 대화를 강조하고, 차기 정권과의 관계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피력한 것은 유의할 대목이다. 북쪽은 주적론과 보안법 폐지 등을 여전히 언급하긴 했다. 그렇지만 북쪽은 과거와 달리 '선결조건'이 아닌 '호소'라는 완곡한 용어를 써서 대화국면을 조성할 뜻을 분명히 했다.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이 "우리는 당국 사이의 대화와 모든 형태의 민간급 회담 및 접촉을 모색해야 하며 그것을 적극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한 대목에서 대남 대화의 후속 제의가 예감되기도 한다.

특히 호소문은 "남조선에서 누가 집권하고 어떤 정권이 나오든 6.15 북남 공동선언은 변함없이 고수되고 철저히 이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북쪽이 6.15선언 중 주안점을 둔 '연방제 통일방안 합의'를 거듭 고수하려는 의도로도 보인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남쪽의 차기 정권을 누가 맡든 대화국면을 지속하겠다는 북쪽의 의지를 남쪽 차기 주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북쪽 내부에서 남쪽에 대한 깊이있는 정세판단과 함께 남북관계의 지향성을 설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북쪽의 움직임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북쪽의 변함없는 고식적 사고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예컨대 북쪽은 반민족적이며 반통일적인 주적론의 폐기를 강조했다.

그렇다면 북쪽이 휴전선상에 배치한 전력(戰力)은 어느 쪽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가. 따라서 북쪽이 진정 남북간 화해와 협력.공영을 원한다면 헛된 수사를 접고 당국간 대화를 바로 재개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남쪽은 호혜협력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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