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유승준 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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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댄싱 머신'이라 불릴 정도로 현란한 율동과 강렬한 눈빛으로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가수 유승준씨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는 뉴스로 떠들썩하다.

특히 지난해 4급 공익근무 요원으로 판정받아 28개월간 복무가 확정된 그가 불과 3개월여 앞두고 '봉사해야 할 국가'를 바꿔버린 것이어서 충격이 더하다.

*** 처신에 비난 빗발치지만

젊은이들은 약삭빠른 그의 처신에 분통을 터뜨리고 나이 지긋한 이들은 인기스타의 '변절'이 그를 우상화하던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분노한다.

그에 대한 비난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병역에 대한 약속위반이요, 다른 하나는 모국을 돈벌이의 무대로만 삼았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든 속내는 '병역의무 면제'에 있다.

현행 병역법은 해외 영주권을 소지한 이라도 1년에 두달 이상 국내에서 영리활동을 하면 즉시 징병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영주권을 갖고 있다가 일정한 연한이 지나 시민권을 획득하면 자동으로 국적을 상실해 영사관이나 법무부에 신고하는 즉시 병역의무가 면제된다. 부모가 잠시 그 나라에서 사는 동안 태어나 자동으로 시민권을 가진 이들이 사실상 국민으로 국내에서 생활하면서 세제혜택 등을 누리다가 만 17세까지 국적을 선택하는 것과 엄연히 다르다.

1976년생인 유씨는 가족과 함께 89년 12월 7일 미국으로 이주했다. 가수 활동을 위해 8년 만에 홀로 돌아와 한국과 미국을 들락거렸다. 그는 병역논란에 대해 지난해 8월 한 방송을 통해 "국가에서 판정을 내리는 대로 따르겠다"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주어진 의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약속 위반은 틀림없다.

지난해 그는 서울음반과 2장의 앨범에 대해 2년간 전속 계약을 하고 37억원의 계약금을 받았다. 통상 가수전속료는 앨범판매량을 예측해 계산한 수익금이 대부분이어서 2억~3억원을 손에 쥔다고 한다. 여기에 2000년 CF모델 수익금만도 무려 22억원을 넘었으니 여섯장의 앨범을 내는 동안 모국이 그를 '청년갑부'로 만든 것도 사실이다.

사랑의 크기만큼 배신감도 깊어지는 것인가. '국민가수'로 사랑받던 유씨였던 만큼 세간의 시선은 더욱 곱지 않다. 하기야 탤런트 차인표씨처럼 영주권자 가운데도 생활의 근거지가 한국으로 바뀌어 징집에 응하는 이가 일년이면 줄잡아 1백여명이 된다지 않는가.

그러나 차근히 따져보자. 과연 유씨가 대중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은 것은 단지 '언젠가는 국방의 의무를 다할 한국인'이기 때문이었을까.

신세대 스타 가운데 대표적인 선행자로 자리매김했던 것은 단순히 이미지 창출수단 내지 홍보 덕만으로 가능했을까.5년간의 활동에서 과연 눈속임만으로 어떤 무대, 어떤 프로그램이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을까.

돈벌이로 말하자면 한두 번 공연이나 고가의 CF로 주머니를 두둑이 채워가는 저명 외국 연예인들도 적지 않다.

모국인 탓에 쉽게 가수가 됐다며 고국에 대한 보은을 요구한다면 YⅡK의 일본인 멤버처럼 한국무대가 데뷔장인 외국인 연예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요구해야 할 것인가. 혹시 우리가 단일민족으로 국민개병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라는 특성에 눈멀어 동포와 국민의 차이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세계화 시대 母國 의미는

수백억원대를 벌어들이는 외국인 용병을 보는 일에 익숙한 지구촌시대에 살면서도 우리 말에 익숙하고 우리와 같은 용모를 지닌 이들에게는 '한국사람'으로 모든 것을 쉽사리 동질화해버리는 우리의 의식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 모국이란 '어머니의 나라'다.

나는 모국이란 법적으로 다른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나라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나는 하루빨리 우리 사회가 '유승준 쇼크'에서 벗어나 제 나라에서 사는 이들의 여유로움을 되찾기를 바란다. 분통을 터뜨리는 대신 그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모국에서의 성공을 발판삼아 세계무대로 도약하기를 주문하는 성숙함을 보이는 것은 정녕 불가능할까.

홍은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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