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음식물쓰레기 처리장 주민 배심제로 결정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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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울산 북구청이 주민 간 마찰로 난항을 겪던 혐오시설 건설 여부를 배심원제를 통해 최종 결정키로 했다.

이상범 울산 북구청장은 6일 중산동 음식물자원화시설(음식쓰레기 처리장)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 대표 8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배심원제를 도입해 건설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사업 추진 여부를 미국식 사법제도인 배심원제를 도입해 해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배심원제는 조례 등 관련규정이 없어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이날 양측이 "모든 결정은 배심원단에 따르겠다"고 합의함으로써 이뤄지게 됐다.

배심원은 울산지역의 경실련.민변.전교조 등 13개 시민단체와 천주교.기독교에서 3명씩 추천받아 총 45명으로 구성키로 합의했다. 또 운영과 결론을 내리는 방식(전원합의 또는 표 대결) 등은 일체 배심원단에 맡기되 첫 회의는 오는 13일 열고, 활동기간은 15일간으로 정했으나 배심원단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활동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음식물 자원화 시설 사업은 2002년 12월 북구의회의 최종 승인이 난 직후 인근 주민들과 마찰을 빚어 그동안 세차례나 공사가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구청장이 주민 설득에 나섰다가 옷이 찢기는 등 곤욕을 치렀고, 주민 대표 2명이 구속되는가 하면 지난달 27일부터 4일간 초등생 자녀를 등교시키지 않는 등 주민들의 반발이 계속돼 왔다.

북구청은 "내년부터 음식쓰레기 직매립이 금지되기 때문에 공사를 늦출 수도, 장소를 옮길 수도 없다"며 "주민들이 걱정하는 악취나 부동산 가격 하락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첨단의 친환경시설을 짓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미 부동산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구청 얘기는 못 믿는다"며 반대해 대립해 왔다.

또 주민들은 "피해지역 주민 동의도 없이 부지를 선정해 민주적 절차를 어겼다"고 반발했고, 북구청은 "주민을 대표하는 의회 승인을 얻었으며 착공 뒤 주민 대표와 구청장 간에 세차례 방송토론을 벌였고, 주민설명회도 했다"고 맞받아쳤다.

배심원제는 지난 1일 이 구청장이 전격 제의해 주민들이 수용함으로써 도입됐다. 주민들은 지난 4~5일 처리장 인근의 아파트 2336가구를 직접 방문해 찬반을 물은 결과 57% 참여에 참여가구 67%의 찬성을 얻어 이 구청장의 제안을 수용했다.

주민 측 대리인인 신면주 변호사는 "그동안 양측의 팽팽한 대립으로 결론을 찾지 못했으나 배심원제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한 셈"이라며 "배심원제가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더라도 양측이 일단 합의한 이상 배심원단의 결정에 따르지 않을 경우 추후 법적 부담을 감당키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심원들이 공사 추진 결정을 내릴 경우 주민들이 반대를 정당화할 명분을 잃게 되고 공사 중단 결정이 났는데도 구청이 추진할 경우 공사 중단 가처분 소송에서 주민들이 승소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울산=이기원 기자

울산 북구 음식물자원화시설 일지

-2002년 11월 : 북구청 부지.예산 확정

12월 3일 :의회 최종 승인, 주민 반대대책위 결성

-2003년 5월 : 주민들 첫 반대 시위

12월 : 착공

-2004년 3월 :주민들 반대시위로 공사 중단

9월 : 구청, 공사 재개

11월 27일~12월 1일 : 초등생 등교거부

12월 1일 :구청장, 배심원제 제의 및 공사중단

12월 4~5일 : 주민투표로 배심원제 수용

12월 13일 : 첫 배심원단 회의(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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