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출판] '톱니바퀴'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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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나쁜 놈들이 서로 싸우면 누구 편을 들어야 하나. 조금 덜 나쁜 놈 편이라고? 미국에서 초특급 베스트셀러 작가로 치부되는 존 그리샴이라면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그냥 지켜 본다."

그의 신작 『톱니바퀴』(원제 The Brethren)가 주는 인상이 그렇다. 초기작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원제 The Firm)나 『펠리컨 브리프』에서 선의의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절박한 상황에 휘말리는 모습을 그렸던 그리샴이 이번에는 음흉한 자와 비열한 자들을 내세웠다.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욕망에 찌든 군상들이다. 이제 편들어주고 싶은 캐릭터를 더 이상 찾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그의 세상 보는 눈이 그렇게 바뀐 것일까.

소설의 구성은 단순하고 도식적이다. 청코너는 러시아 강경파의 군사력 증강을 염려하는 노회한 CIA 국장. 그는 군사비 지출 증가라는 총대를 멜 만한 대통령 후보를 물색하고 미국에 대한 테러위협을 방관하면서 분위기를 띄워간다.

홍코너는 각자 사고를 치고 교도소로 들어간 세 명의 전직 판사. 그들은 '동성애자 구함'광고를 낸 뒤 이를 보고 연락하는 부자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고 있다. 이쯤 되면 눈치빠른 독자들은 무릎을 칠 것이다. "아, 그 대통령 후보가 판사들이 쳐놓은 덫에 걸리겠구나."

정답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러시아 강경파는 뒤로 제쳐놓고 CIA 국장과 판사들이 벌이는 머리싸움으로 급물결을 탄다. 그런데 앞서 지적한 전작에서 못된 자에 대한 단호한 응징을 보여주었던 그리샴은 이번에는 이들의 '거래'를 묵인하고 막을 내려버린다.

특히 이집트 주재 미국 대사관 폭발을 방관한 CIA 국장에 대해서는 "전 세계를 지켜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 많았다. 레이크의 선거운동을 위해 테디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이제 미국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테디가 수고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상권 1백99쪽)라고 슬쩍 두둔해주기까지 한다.

서로의 약점을 손에 쥐고 추악한 뒷거래를 일삼는 고위층의 모습을 지켜보는 독자들은 그래서 그리 개운치 않다. 어쩌면 그리샴은 독자들에게 "이제 편 들 놈은 없다"고 외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원제 'The Brethren'은 동업자란 뜻으로 소설 속 세 명의 늙은 변호사를 지칭한다. 출판사는 이 말을 '톱니바퀴'로 바꿨다. 톱니의 크기가 조금이라도 어긋나서는 돌아갈 수 없는 게 톱니바퀴다.

똑같이 나쁜 놈들이 누가 더 나쁜지 힘겨루기를 하는 곳. 그렇게 물고 물리며 돌아가는 이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사회가 아닌가. 정말 정곡을 찌르는 절묘한 제목이다.

정형모 기자

원제 ‘The Brethren’은 동업자란 뜻이다. 소설속 세 명의 늙은 변호사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출판사는 이 말을 ‘톱니바퀴’로 바꿨다. 톱니바퀴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똑같은 크기의 두 요철이 서로 맞물려야 한다. 그 크기가 조금이라도 어긋나서는 돌아갈 수 없는 게 톱니바퀴다. 똑같이 나쁜 놈들이 누가 더 나쁜지 힘겨루기를 하는 곳. 그렇게 물고 물리며 돌아가는 이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사회가 아닌가. 정말 정곡을 찌르는 절묘한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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