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 스트리트 "어떤 부상도 날 막을 순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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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오뚝이처럼 일어서다.'

1998년 나가노 올림픽 스키 여자 슈퍼대회전 금메달리스트 피카보 스트리트(31.미국)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그의 선수생활은 스스로 "죽음과 춤을 췄다"고 평할 만큼 부상과 재기의 연속이었다.

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에서 은메달에 머문 스트리트는 96년 미국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월드컵 스키 활강 1위를 차지해 나가노 올림픽을 누구보다도 기다렸다.

그러나 개막을 석달 앞두고 연습 도중 충돌 사고로 왼쪽 무릎 근육이 찢어졌다. 개막을 1주일 앞두고는 또 다른 사고로 뇌진탕이 일어났으나 툭툭 털고 일어나 나가노 올림픽 슈퍼대회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였다. 한 달후 스위스에서 열린 월드컵 스키대회에서 안전벽에 부딪치며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오른쪽 무릎은 완전히 깨졌고, 왼쪽 대퇴부의 뼈는 산산이 부서졌다. 만일 뼈조각이 동맥을 건드렸다면 스트리트는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었을 지경이었다. 여러 차례 응급 수술 끝에 목숨은 구했지만 자칫하면 하반신 마비에 이를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러나 스트리트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생각한 대회에서 뜻하지 않은 부상을 입은 그는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끔찍한 사고로 장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상처투성이인 두 다리로 혼자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다. 대신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자기가 참가했던 스키 대회 코스를 그리며 연습했다.

2년간 6번의 수술과 재활 훈련 끝에 2년 만인 99년 12월 다시 슬로프에 올라섰다. 스트리트는 "스키를 향한 열망이 나를 일으켰다"고 그 때를 회고했다.

스트리트는 다음달 9일(한국시간)개막하는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에 출전,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그녀가 올림픽에서 넘어야할 상대는 둘이다. 하나는 금메달을 놓고 다투는 다른 선수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여러차례 사지를 넘나들면서 생긴 공포심이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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