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엔 왜 처녀가 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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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탐방기를 쓴 일본의 작가 한 분은, 덴마크를 혼자 여행하다 보면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결혼 적령기 여성 가운데 거의 처녀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사정하고 크게 다른 모양이다.

곽대희의 性칼럼

우리는 순진무구를 신앙처럼 여기고 숭상하는 데 비해 서양 사람들은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덴마크 여성들은 서둘러 처녀를 버리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잠자리 유충이 마지막 껍질을 벗고 하늘로 비상하는 능력을 갖는 것처럼 여자가 처녀를 버려야 원만한 성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문화이고 또한 상식이다.

남성들 역시 많은 남자친구와 깊은 관계를 갖고 남자에 대해 충분히 훈련을 쌓아 단 것이든 쓴 것이든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 한다. 다른 남자를 통해 남자를 보는 눈을 뜨는 것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우리나라 남성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또 한 가지 한국 남성이 처녀를 배필로 맞고 싶은 배경에는 성스러운 가정을 이룩함에 있어 배우자가 순진무구한 처녀였으면 하는 바람, 바꾸어 말하면 결벽증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마치 자기 집안 혈통에 다른 사람의 피가 섞여 들어오는 것을 염려하는 고대인의 터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결벽증이란 것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젊은이에게나 다 있을 법한데 유독 덴마크 남성만 그런 배알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어찌 그런 바람이 없을 것인가?

하지만 이미 이곳에서는 그런 것을 원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렇게 처녀의 성이 무너지는 것은 덴마크의 사회제도와 관련이 없지 않다. 이 나라에서는 이르면 16세, 늦어도 18세까지는 대개의 어린이가 부모 품을 떠나 아파트 같은 데서 혼자 생활한다. 이것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남녀 교제를 즐기는 거점 노릇을 한다.

그 결과 18세가 되면 이미 10명 내지 15명 정도의 남자를 경험하고 그것을 통해 각각의 남자가 갖는 정신적 애정과 육체적 사랑의 실체를 확인한다. 이처럼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치면서 한 사람을 배필로 점 찍는 것이 그들의 실수 없는 결혼방식이다. 지극히 신중한 결혼 수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실험 결혼’ 성격의 혼전 생활은 집 한 채를 여러 사람이 빌려 집세를 분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혼전 섹스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살다가 자녀를 가질 결심을 하면 정식으로 결혼식을 거행한다. 자유연애 기간엔 피임에 만전을 기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동안은 자궁 내 피임장치로 불필요한 임신을 방지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프리섹스의 단맛을 즐기라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개방된 남녀교제의 체험을 통해 정신적, 육체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상대를 구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1년 이상 동거했어도 도저히 정을 줄 수 없다고 판단되면 미련 없이 그 남자와 결별을 선언한다. 이런 적극적인 방법으로 생활하므로 결혼할 때까지 처녀로 남아 있는 아가씨가 없다.

덴마크 여성의 섹스관은 지극히 앞서가는 진보형이다. 그녀들은 섹스도 대화나 식사와 마찬가지로 남성을 잘 알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대화하고 식사하고 춤을 추고 그렇게 교제의 심도가 깊어진 다음에야 섹스를 하는 우리의 남녀교제 관행으로 볼 때 덴마크 여성은 그 순서가 전도되어 있다.

오늘 처음 만났어도 거두절미하고 섹스를 할 수 있는 것이 덴마크 청춘남녀들이다. 알기 쉽게 표현하면 덴마크에서는 아가씨들이 구두를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를 바꾼다. 그것은 대개의 경우 자기 마음에 드는 구두를 발견했기 때문이지만 때로는 잠깐 다른 것을 신어 보고 싶은 것과 같다. 우리의 모럴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유럽의 한쪽에서는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이코노미스트 9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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