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둔 래빈, 세속 초월한 바이올린 연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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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호 35면

피아니스트로서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늘 몇 가지로 압축됩니다. 특히 늘 빠지지 않는 질문은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보통 저에게서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기대하지만 제가 한결같이 대답으로 내놓는 이 사람은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게다가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사람도 아닙니다. 제가 제일 사랑하는 연주자는 마이클 래빈(1936~72)입니다.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치고는 늦은 나이인 7세에 처음 악기를 잡았지만 채 5년도 안 돼 명지휘자 아르투르 로진스키와 협연 무대를 가졌고, 열다섯 살에 거장 드미트리 미트로폴로스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카네기홀에서 데뷔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런던 데뷔를 성황리에 마쳤고 이후 세계 무대에서 쉴 틈 없이 공연했습니다. 승승가도를 달리던 그에게서 이상증세가 목격된 것은 카네기홀에서 연주하던 도중 무대에서 중심을 잃고 쓰러졌을 때였습니다. 단순한 사고였더라면 좋았을 이것은 죽을 때까지 그를 괴롭힌 신경증의 전조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그는 계속해서 자주 중심을 잃었고 무기력증과 마약에 빠지게 됩니다.

50년대 후반부터 내리막길을 걸은 탓에 음반회사는 60년 이후로 더 이상 그의 음반을 출반하지 않았습니다. 제일 잘 알려진 파가니니, 차이콥스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바흐·이자이의 무반주 소나타 음반은 모두 20대 중반이 되기도 전에 녹음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어 파가니니의 무반주 카프리스를 녹음한 동료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은 “마이클 래빈이 이 곡을 녹음한 것을 알았다면 나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해에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그의 말년의 음원이 발매되었습니다. 62년 피아니스트 로타 브로닥과 함께 녹음한 바이올린 소품들과 죽기 3년 전인 69년 베를린에서 리아스(RIAS)교향악단과 함께한 브루흐 협주곡 1번의 실황 연주를 담은 음반입니다. 침체기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의 연주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성인 연주자로 거듭나지 못한, 박제된 신동이라는 그릇된 평가를 한 번에 불식시킬 만한 놀라운 연주들입니다.

이전에도 녹음한 바 있는 비에냐프스키의 ‘기상곡’, 사라사테의 ‘스페인 춤곡’ 등은 거칠 것 없던 젊은 날의 해석과 비교했을 때 처절하다 싶을 정도의 깊은 울림을 자랑합니다. 문학으로 치면 서너 장의 신변잡기 정도에 불과한 이 소품들에 그는 자신의 모든 인생을 담아냅니다. 차이콥스키의 ‘소중했던 시절의 추억’을 그처럼 절절하면서도 동시에 감상성을 배제한 채 그려낼 수 있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또 있을까요.

세상의 온갖 아이러니를 초월한 듯 보이는 그의 연주는 사실 인간적이지는 않습니다. 이 음반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간이 절로 찡그려지는 독특한 음색과 신기에 가까운 테크닉이 자아내는 환각세계를 듣고 있노라면 그는 분명 천사의 화신이거나 악마의 분신, 둘 중의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사라사테의 ‘카르멘 환상곡’에서 세속적인 캐릭터 카르멘을 표현하기에 그의 음악은 너무 초현실적입니다. 그의 영혼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세계, 속세에는 닿아있지 않은 것만 같습니다.

공연 실황인 브루흐의 협주곡 제1번에서는 도입부부터 그가 마지막으로 불태운 예술혼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드러나 가슴이 아플 정도입니다. 예전보다 더욱 짙어진 비브라토는 음악이 그려낼 수 있는 삶의 질곡을 몽땅 쥐어 짜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년의 이런 호연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는 피어나지 못하고 72년 서른다섯 살의 나이로 영원히 지고 말았습니다.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그의 사인은 약물 중독, 자살, 뇌진탕, 쇼크사 등 여러 가지 추측을 낳았으나 끝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후, 무슨 이유에선지 그의 이름은 20세기 음악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맙니다. 일부 매니어에게는 여전히 사랑받는 음악가지만 대중은 그를 잊었습니다.

결국 그의 삶을 파괴시킨 건 그가 추구했던 영원의 음악이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질고를 초월한 영원의 세계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그의 음악이 수십 년을 지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저에게는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마치 영겁의 고통을 감내한 프로메테우스 덕에 불을 사용하게 된 인류처럼 그의 음악이 저와 제 음악을 살리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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