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외환위기 빌미 미,한국 길들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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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워싱턴=연합]미국이 1997년 한국의 외환 위기를 계기로 '한국 길들이기'를 시도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워싱턴 포스트 경제담당 기자인 폴 블루스타인은 당시의 취재경험과 2백여건의 관련 인터뷰를 바탕으로 집필한 책 『징벌(Chastening)』에서 미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한국에 어떻게 압력을 가했는지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최근 출간된 이 책에 따르면 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97년 11월 비밀리에 방한해 한국 경제 관료들과 면담했을 당시 그는 외환 보유액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경제구조 재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등 미국 경제팀은 한국 구조조정 개편을 강력히 요구했으며, 데이비드 립튼 재무차관을 한국에 보내 한국 정부와 IMF의 협상과정을 직접 감시하게 했다.

립튼은 한국 정부와 협상을 벌이던 휴버트 나이스 IMF 아태담당 국장과 수시로 만나 미국의 요구사항을 전달했으며, 97년 12월에는 루빈 장관이 캉드쉬 총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미국의 요구사항을 재차 강조했다.

한국과 IMF는 당초 법정금리 한도를 12.5%에서 15~20%로 올리기로 의견을 모았으나 이같은 미국의 압력으로 막판에 25%까지 올리기로 변경했다고 이 책은 적고 있다.

블루스타인 기자는 이 책에서 한국과 태국.인도네시아.러시아.브라질 등을 휩쓴 외환위기 대처 과정을 분석하면서 IMF의 경제정책 수단이 총체적으로 부적절했음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IMF는 개발도상국,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와 기업 금융의 복잡성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 없이 억측과 뒷거래로 정책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블루스타인 기자는 또 전망이 좋을 때 경쟁적으로 돈을 투자했다가 상황이 나빠지는 조짐이 나타나자 한꺼번에 돈을 빼간 기관투자가들이 한국 등의 외환위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IMF 같은 국제 경제기구들은 끊임없는 도전에 맞서기 위해 변신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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