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위안화 절상] 上. 미국의 전략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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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1, 2분기보다 높은 3.9%를 기록했다. 이같이 양호한 성적을 낸 데는 중국 덕이 컸다. 중국에서 저가의 공산품들이 홍수처럼 밀려오면서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활동의 바퀴를 잘 굴렸기 때문이다. 미국의 성장률이 높으면 대중(對中) 무역적자가 늘어나는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최근의 달러가치 폭락은 이런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을 상대로 벌이는 미국의 또 다른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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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10월까지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지난해 동기보다 20% 이상 늘어난 1143억달러에 달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도 지난해 적자(1240억달러)를 넘어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 틀림없다. 미국이 올 들어 10월까지 대중 교역에서 본 적자는 전체 무역적자(4807억달러)의 24%에 이른다.

미국은 이런 적자의 상당 부분이 중국의 고정환율제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벌어들이는 달러화를 감안하면 위안화 가치가 올라가야 정상인데 정부가 이걸 막음으로써 미국의 무역적자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는 시각이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난달 19일 독일에서 달러 약세가 불가피하다며 환율대전을 선언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그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달러 표시 자산의 매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은행 총재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환율 전망(달러 약세)을 한 것이다.

이미 하락 일로에 있던 달러화는 이후 더욱 빠른 속도로 떨어지며 국제외환시장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월가에서는 이 발언을 FRB가 확대 일로의 무역적자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결과물로 해석했다.

유럽연합(EU)도 지난달 21일 G20(주요 20개국) 회담을 계기로 미국 편에 가세한 것처럼 보인다. 지나친 달러 약세에 대해 불평을 하면서도 인내심을 키우고 있는 모습이다. 하루빨리 위안화가 절상돼야 달러 약세가 멎고 유로화도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자신의 처지를 강조하고 있다. 입으로는 유연한 환율제도를 말하지만 핵심인 시기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압박이 강해지자 맞받아치기도 한다. 지난달 28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달러 가치가 연일 떨어지고 있지만 미국은 이를 방치하고 있다"며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 며칠 전 리뤄구 중앙은행 부총재는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미국 경제의 내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다른 나라로 돌리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최근 달러 하락세가 더욱 빨라지면서 중국이 굴복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성급한 면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2일 위안화 절상 문제를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금융시스템이 아직 취약한 상황에서 환율제도를 잘못 손댔다가 큰 혼란에 빠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중국은 환율 문제보다 금융시장 구조조정이나 도시 유입인구를 위한 일자리 창출을 더 화급한 현안으로 보고 있다. 신화통신은 3~5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앙 경제공작회의'와 관련, 대출 억제나 농업생산성 증대 등이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환율 문제에 대해서는 준비된 게 없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워싱턴 소재 국제경제연구소(IIE) 소장인 프레드 버그스텐 박사는 "중국이 유연한 환율제도를 도입하면 달러 약세는 유로당 1.4~1.5달러에서 멈추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유로당 2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케네스 로거프 하버드대 교수는 앞으로 2년간 달러화가 15~20% 더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중국의 환율제도는

환율변동폭 하루 ±0.3%로 제한
사실상 고정환율제 10년 넘게 고수

중국은 1994년부터 공식적으로'관리변동환율제'를 채택해오고 있다.

관리변동환율제란 위안화 환율을 미국 달러 환율에 고정한 뒤 하루 변동폭을 상하 0.3%로 제한한 것이다. '변동'이란 용어가 들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고정환율제에 가깝다.

위안화 환율은 원칙적으로 전날 은행 간에 거래된 가격을 기초로 중국 인민은행이 기준환율을 결정한다. 위안화의 기준환율은 달러당 8.27~8.28위안 선에서 거의 변동이 없다.

중국이 사실상의 고정환율제를 10년 넘게 고수한 것이 미국에 '환율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 중국은 관리변동환율제를 도입하기 전까지 다양한 환율제도를 실험했다. 1949년 건국 때부터 개혁.개방이 시작된 78년까지는 변동이 전혀 없는 계획환율제도를 실시했다.

79년부터 84년까지는 이중환율제도를 채택해 공식환율과 내부결제환율이 동시에 사용됐다. 85년부터 2년간 단일화됐던 환율제도는 87년부터 93년까지 다시 이중환율제로 되돌아갔다. 중국인민은행이 정하는 공정환율과 기업 간 외환거래를 할 때 통용된 조절환율이 모두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두 환율의 격차가 두배까지 벌어지는 등 부작용이 생기자 94년 1월부터 조절환율을 기준으로 환율을 다시 단일화했다. 이때 공정환율은 일시에 달러당 5.77위안에서 8.72위안으로 뛰었다. 중국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주재로 3일부터 개막하는 중앙 경제공작회의에서 새로운 환율제도 개혁방안을 어떤 식으로든 논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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