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부정] 명문대생 '대리시험 장사'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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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명문대생들이 돈을 받고 수능 대리시험을 치른다는 소문이 잇따라 사실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수능 시험 부정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1일 올 수능 시험에서 대리시험을 치렀다며 자수한 서울 모 의대 재학생 기모(21)씨를 상대로 조사했다.

기씨는 경찰에서 "지난 7월 인터넷 게임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수험생 한모(21)씨의 부탁을 받고 현금 40만원과 일본 여행 경비를 받는 대가로 시험을 대신 치렀다"고 진술했다. 기씨는 한씨를 대신해 자신의 사진이 붙은 응시원서를 기씨의 주소지 관할인 울산 교육청에 제출한 뒤 울산에서 시험을 치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휴대전화를 끈 채 잠적한 한씨의 소재를 추적하고 있다.

서울 명문 사립대 2학년에 재학 중인 이모(20.여)씨도 대리 시험 사실을 털어놓기 위해 이날 인천지방경찰청을 찾았다. 이씨는 인터넷 수능카페에서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한다는 대학 휴학생 반모(22.여)씨의 제의를 거절하지 못했다.

반씨는 이씨에게 수능 이튿날 200만원을 건넸고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는 점수가 나오면 점수에 따라 100만~300만원의 성과급을 추가로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앞서 반씨는 11월 초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증을 분실했다고 신고해 신고서를 받았다. 이씨는 신고서의 반씨 사진을 떼낸 뒤 자신의 것을 붙여 시험장에 갔다. 반씨는 지난 9월 이씨의 사진을 부착해 인천시교육청에 수능 원서를 냈다.

이씨는 경찰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비를 마련한다는 생각에 그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자수한 이씨와 반씨는 그동안 심적 부담에 많이 시달려 조사 도중 '마음이 홀가분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광주에서는 서울 S여대 제적생 김모(24)씨가 2002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대리시험을 친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김씨는 카드빚에 쫓겨 대리시험을 쳤다고 밝혔으며 삼수생 주모(20.구속)씨로부터 3년에 걸쳐 1800여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명문대 학생들의 대리시험이 사실이 속속 밝혀지자 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회사원 이모(33)씨는 "앞길이 창창한 명문대생들이 돈 몇 푼에 양심을 팔았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며 "배운 사람들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세태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서울의 명문대 재학생들이 울산.광주.인천 등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대리시험을 치른 사실이 잇따라 적발되자 시험을 알선하는 과정에 브로커가 개입했는지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인터넷에는 명문대생들이 대리 시험을 의뢰받았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어 브로커 개입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인천= 정영진 기자,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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