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의 선택] 한솔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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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최근 제지업체들은 펄프 가격 때문에 고통을 겪어 왔다. 전 세계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서 수요가 줄어 2009년 4월 t당 470달러까지 떨어졌던 국제 펄프 가격은 최근 t당 820달러까지 올랐다. 저점 대비 무려 74% 상승했다.

펄프 값이 뜀박질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전 세계 펄프 수요의 25%를 차지하는 중국의 내수 경기가 살아나면서 종이 수요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칠레의 지진이었다. 칠레는 전 세계 펄프의 8%를 공급하는 나라다. 그런데 지진으로 칠레의 펄프 공장에 이상이 생겨 일시적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수요는 늘고 공급이 줄면서 펄프 값이 급등한 것이다. 제지업체들로서는 반가울 리 없는 상황이다. 이런 점은 제지업체 주가에도 반영됐다. 다른 업종보다 주가 흐름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쇄용지 대표업체인 한솔제지를 투자자들에게 추천하고자 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펄프 가격이 곧 내림세를 탈 것이라는 판단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펄프 수요 증가세가 주춤하고 있다. 여기에 칠레 펄프 업체들도 속속 공장 가동이 정상화되고 있다. 수요-공급 불균형을 초래해 펄프 값 상승을 부추겼던 제일 큰 요인이 해소되고 있는 것이다. 펄프 가격은 6월을 정점으로 고개를 숙이기 시작해 제지업체들의 이익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제지업체들의 인쇄용지 1t 판매가에서 원재료비를 뺀 제조마진은 지난해 3분기 48만6000원에서 올 1분기에 32만2000원으로 줄었으나 올 4분기에는 40만원 가까이로 오를 것으로 분석된다.

그중에서도 한솔제지의 이익 증가가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한솔제지는 올 3월 종이 가격을 5~7% 인상했다. 이달에도 5% 정도 추가 인상을 추진 중인데,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한솔제지로서는 판매 가격 인상에, 원재료비 하락까지 2중의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이다.

한솔제지가 가격 인상에 성공한 데는 제지업계의 구조조정도 한몫했다. 국내 종이 시장은 2008년까지만 해도 제지업체의 난립으로 공급 초과 현상이 심했다. 그러다 인수합병(M&A)과 일부 제지사의 생산라인 폐쇄 등 구조조정이 일어나면서 이젠 수요와 공급이 거의 균형을 맞춰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원재료비 상승을 이유로 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공급업자의 요구를 수요자들이 거절하기 어렵다.

한솔제지는 또 인쇄용지 말고도 과자 등의 포장 상자로 쓰이는 백판지나, 신용카드 영수증용 감압지 등 고부가가치 종이를 많이 생산한다. 그래서 인쇄용지 위주인 다른 업체보다 이익률이 높다는 게 강점이다.

한솔제지 주가의 발목을 잡고 있던 그룹 계열사 리스크도 확 줄었다. 한솔건설이 지난해 말 부실자산을 대폭 정리한 게 대표적이다. 또 아트원제지 등 우량 계열사들의 실적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이런 점들로 인해 올 2월 한솔제지의 회사채 신용등급이 BBB+에서 A-로 상향조정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호재에 둘러싸였다고 할 만한 한솔제지지만 주가수익비율은 6.6배 정도에 그치고 있다. 주가지수가 많이 빠진 현재 유가증권시장 평균(약 9배)보다도 훨씬 낮다. 앞으로 큰 폭의 실적 개선에 주가 매력까지 갖춘 게 바로 한솔제지다.

김미연 유진투자증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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