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세상읽기

경쟁력지수가 경쟁력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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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경쟁의 결과가 순위다. 운동경기든 입시든 경쟁이 끝나면 1등부터 꼴등까지 등수가 나온다. 등수가 떨어진 사람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그걸 외면할 순 있어도 없앨 수는 없다. 순위 매김이 싫으면 처음부터 경쟁을 말아야 한다. 순위 매김이 꼭 나쁜 것도 아니다. 어떤 분야에서 순위가 낮다면, 더 노력해보겠다는 자극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고, 더 잘할 수 있는 다른 분야로 눈길을 돌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경쟁을 피할 순 없겠지만 그 결과로 나타난 순위가 인생을 결정 짓는 최종 낙인은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경쟁은 매 순간 도처에서 벌어진다. 그러니 한 번의 결과로 낙심하거나 우쭐댈 게 아니라 다음 번 경쟁에 참고자료로 삼으면 그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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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간의 경쟁에도 순위가 있듯이 나라 간의 경쟁에도 등수가 있다. 바로 국가경쟁력 지수다. 세계경제포럼(WEF)이나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내는 종합적인 국가경쟁력지수가 있는가 하면, 경제자유도나 부패, 세계화 등 특정한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비교한 지수도 있다. 국제신용평가사에서 내놓는 국가신용등급도 크게 보면 국가경쟁력 지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지수들은 나름대로 각국의 경쟁력을 비교하거나,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유용한 자료로 쓰일 수 있다. 국가신용등급 같은 지표는 국채의 발행금리를 결정하는 기준으로써 실제적인 쓰임새를 갖기도 한다.

마침 IMD가 2010년도 세계경쟁력지수를 발표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경쟁력 순위가 23위로 지난해보다 4단계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지난해보다 10단계나 떨어진 27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IMD 경쟁력 순위에서 처음으로 일본을 제쳤다. 국가대항전만 열리면 숙적(?) 일본에게만큼은 질 수 없다는 유별난 국민정서를 감안해 보면 국가경쟁력에서도 일본을 눌렀다는 게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공표된 경쟁력 순위에서 일본을 제쳤다는 게 영 실감 나질 않는다. 우리나라가 순위가 높으면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경쟁력 순위가 높다는 게 실제로 경쟁력이 크다는 것인지조차 확신이 서질 않는다.

우선 국가경쟁력이란 게 축구나 야구 같은 스포츠에서의 국가대항전처럼 눈에 보이는 경쟁의 결과물이 아니다. 종목을 정해 놓고 경쟁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활동의 결과를 바탕으로 국가의 역량을 추상적으로 비교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국가경쟁력지수는 한 나라의 경쟁력을 획일적으로 재단하는 절대적인 잣대일 수 없으며, 실제 경쟁력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각 기관에서 발표하는 경쟁력지수의 산출 과정을 보면 지수의 신빙성에 의문이 간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2008년 보고서에서 국가경쟁력지수가 측정 방법의 주관성과 조사 대상의 편중성, 가중치의 불합리성 등 때문에 적지 않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수 자체의 문제점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국가경쟁력 순위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순위가 올라가면 흡사 정부가 잘해서 경쟁력이 올라간 것으로 치부하고, 순위가 떨어지면 곧바로 나라의 경쟁력이 떨어진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정부에서는 경쟁력 순위가 올라간 것을 정부의 업적으로 대대적으로 공표했다가, 다음 해 순위가 떨어지자 평가에 문제가 있다고 해명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기에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 세계 어느 나라 언론도 국내 언론만큼 국가경쟁력지수를 유별나게 크게 보도하지 않는다.

국가경쟁력지수는 실제 경쟁력이 아니라 그저 참고자료일 뿐이다.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지적된 분야가 있으면 개선하면 그만이다. 외부 평가에 휘둘리는 것 자체가 약점을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다. 정부가 이번 IMD 경쟁력 순위가 2년 연속 올랐는데도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국제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국제신용평가사들의 국가신용평가에도 의연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들의 평가에 문제 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차제에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국제신용평가사의 개혁을 주도적으로 제기해 볼 만하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