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네 살의 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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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경미(1959~ ), 「네 살의 여자」 전문

야야야야―
네 살짜리 한 아이여자가 오월의 라일락꽃 느티나무 밑을
성냥개비 같은 두 팔 활짝 바람에 꽂은 채
사과 조각처럼 뛰어간다
그 속 원시의 주술사가 세차게 북을 두드린다
라일락빛 뺨 위로 얼마든지 무한한 날들이
여자의 입술을 귀로 귀로 복숭아처럼 끌어올린다
생에 그리고 사랑에
아직 더럽혀지지 않은 흰 치아 몇 톨이 보인다
질투와 연민으로 가슴이 에인다
훼손이여
나 생을 얼마나 편지 뜯어보지도 않고 탕!
문 닫아버렸는지
꽃 속의 뜻을 두려워 서성였는지 알지
알아도 멈출 수 없는 낭비 덕에 나 살아냈는가
느티나무 같은 네 살짜리 여자가 펼쳐 보이는 시간이
기울인 양초에서 떨어지는 촛농처럼
라일락 꽃잎에서 어깨로 얼굴로 똑, 똑, 너무 뜨겁다


시인은 네 살짜리 <여자아이>를 <아이여자>라고 부른다. 어른여자인 시인은 아직 라일락꽃 느티나무 밑에 있는 아이를, 웃음으로 입이 복숭아처럼 찢어질 것 같고 무구한 세계에서 사과조각처럼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아이를 황홀한 질투심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동시에 <뜯어보지도 않고 탕!> 문이 닫힐 생에 훼손될 여자의 미래를 연민의 눈으로 투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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