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12월의 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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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2월이다. 12월은 나만이 아닌 남을 생각하는 달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는 사는 게 힘들다 보니 남 돌아볼 여유조차 사치스럽게 여겨질 정도가 되었다. 한마디로 너무 각박하다. 아니 각박하다 못해 살벌하다.

올해 달력도 한 장 남았다. 망년회다, 송년회다 연말모임도 시작되었다. 하지만 괜히 애꿎은 소주잔만 축내며 몸 상하는 데 진력하지 말고 올해의 남은 한 달 동안 차분하게 이것만은 꼭 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 마음에 낀 때 모두 씻고 가자

첫째, 마음목욕을 하자. 세상이 각박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때가 많이 끼었다. 괜한 짜증과 전방위적인 분노 모두 마음의 때다. 좀 씻자. 아울러 마음의 잡동사니도 털어내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쓸데없는 근심과 걱정 모두 마음의 잡동사니다. 마음의 잡동사니가 많으면 자연히 마음이 무겁고 편치 못하다. 물론 사는 데도 도움이 안 된다. 그러니 깨끗하고 과감하게 버리자. 한꺼번에 버리려면 힘겹다. 올해 남은 한 달 동안 차근차근 정리해가면서 확실히 버리자.

둘째, 더 이상 미루지 말자. 연초에 마음먹었던 일인데 아직도 하지 못한 일들이 분명히 있을 게다. 아니 그새 잊었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할는지도 모르고 설사 기억하고 있어도 "나중에 하지 뭐"하며 또 한 해를 넘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중'이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중은 오늘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에게만 온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 자주 잊고 산다. 그러니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지금 하자. 왠지 할 자신이 없다고, 실패하면 어쩌느냐고 되묻지 말자. 세계여자테니스 챔피언이었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가 한 말이 있다. "시도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해서 실패"라고. 앉아서 '실패의 계정'을 키우느니 차라리 시도해보자. 시도했다가 안된 것들은 실패의 계정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의 계정'으로 들어갈 뿐이다.

셋째, 트레버가 되자. 트레버는 영화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 국내개봉 영화명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의 주인공이다. 새로 부임한 시모넷 선생이 세상을 변화시킬 아이디어를 찾아내 실천해보라는 색다른 과제를 내주자 열두살 소년 트레버는 고민 끝에 '페이 잇 포워드'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내가 먼저 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고 다시 그 세 사람이 또 각각 다른 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면 3의 배수로 선행의 릴레이가 번져나가 결국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발상이었다. 물론 트레버는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그것을 실행했다.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 거창하고 요란한 변화와 개혁의 구호보다 소리없이 번져가는 선행의 릴레이가 더 값지지 않겠는가.

넷째, 꿈이 후회를 뒤덮게 하자. 대부분 마음이 몸보다 먼저 늙는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말처럼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 마음도 늙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나 늙는다. 그리고 누구나 살면서 후회도 한다. 하지만 가는 세월을 멈출 순 없어도 후회가 꿈을 대신해 마음부터 먼저 애늙어가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쓸데없이 마음의 나이만 늘리지 않도록 꿈이 후회를 뒤덮게 하자. 올해의 남은 한 달 동안 열심히 새 꿈을 꾸자. 새해를 맞으면서 꾸려면 이미 늦다. 지금이 새 꿈을 꿀 적기다. 12월은 새해의 모태이자 새 꿈의 자궁이기 때문이다.

***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감동 주자

다섯째,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감동시키자.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감동이 죽었다. 대신에 분노와 증오, 그리고 비난과 불만이 넘친다. 살기마저 감돈다. 건드리면 터질 듯한 분위기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 사회는 자멸하고 만다. 감동 없는 사회엔 미래도 없다. 그러니 다시 따뜻한 감동이 있는 사회를 만들자. 하지만 구태여 먼데 있는 사람을 감동시키려고 애쓰지 말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감동시켜보자. 감동은 파동이다. 작은 감동이 퍼져나가 큰 울림을 낳는다. 감동은 거창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전화 한 통, 감사의 쪽지 하나, 짧은 칭찬과 격려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 당장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자. 아울러 이 '12월의 제안'도 함께 나누자.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