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왕시의 균형잡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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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2보 (22~37)]
黑. 송태곤 7단 白.왕시 5단

중국 원나라 때 황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현현기경(玄玄棋經)'은 바둑에 대한 수많은 글과 함께 항간에 전해 내려오는 각양각색의 묘수풀이를 집대성한 책이다. 그 묘수풀이 중에는 전 판을 빙 돌아가며 축으로 몰아가는 현란한 수순이 나온다. 옛사람들이 도자기를 빚듯 공들여 만든 이런 묘수들은 실전과는 무관한 '작품'이지만 하도 정교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실전에서의 축은 간단하고 동시에 치명적이다. 축인데도 움직이면 한 번 나갈 때마다 일곱 집 손해라는 게 정설이다. 축이 안 되는데 모는 것은 조금 더 치명적이다. 이세돌9단은 안 되는 축을 10여번이나 몰고 나가 승리한 적이 있지만 그런 파격적인 승리는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것이다.

22로 모는 수는 그래서 검토실을 긴장시켰다. 흑23은 필연인데 다음에 백은 어찌 두려는 것일까. '참고도' 백1로 축머리를 두고 흑2에 3으로 차단하면 채산이 맞는다는 것일까.

왕시5단은 24로 그냥 이었다. 이런 식의 절충은 하수들 바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인데 왕시는 원래 이렇게 둘 생각이었던 것이다. 25와 26의 갈림, 이것은 부분적으로 백이 미흡하다. 그러나 전체를 보면 균형은 훌륭히 유지되고 있다.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아마추어적인 수라도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왕시의 자세가 이상하게도 안정감을 준다.

백30에 A로 젖히면 대변화가 일어난다. 송태곤7단은 우하의 절충에 만족한 듯 31로 타협했고 32로 잡자 백의 하변도 두터워졌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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