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부정 수사 전국 확대] 거의 정답… 브로커 개입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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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이 29일 수능 당일에 오고간 '숫자 메시지' 550여건을 추려내면서 발신 지역을 추적한 결과 서울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휴대전화 커닝 사건 수사가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경찰이 '숫자 메시지'자료를 토대로 구체적인 부정 행위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져 더 큰 파장이 예상된다.

경찰청은 광주에서 '수능시험 휴대전화 커닝'사건이 터진 직후 전국 경찰에 수사를 강화할 것을 지시하고 각 교육청 홈페이지나 포털 사이트에 오른 제보 글의 IP 추적 작업 등을 벌여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보가 소문을 듣고 올리거나 IP 추적이 불가능한 상태여서 다른 지역 수사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하지만 서울경찰청이 수능시험 정답과 거의 일치하는 문자메시지들을 찾아내면서 수사가 전기를 맞았다. 경찰이 이번에 찾아낸 휴대전화 번호들은 광주 지역 수사에서 나온 것들과 대부분 달라 전국적으로 부정행위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 부정행위 가담자 얼마나 되나=경찰이 550여건의 메시지를 부정 행위 의혹이 있는 것으로 압축했으나 가담자 숫자는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전송된 메시지 숫자에 따라 한 건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한 명이 메시지를 한 번 받거나, 한 명이 여러 번에 걸쳐 메시지를 받을 경우 가담자는 한 명이지만 건수는 여러 건으로 계산된다. 한 사람이 여러 명에게 답을 보냈을 경우 부정행위 연루자는 550명보다 훨씬 적어지게 된다. 이 경우 답을 전송해주고 대가를 받기로 한 금전 거래의 가능성이 커진다.

구체적인 혐의자들이 드러나면서 550여건 이외의 추가 부정 메시지가 나타날 수도 있다. 부정행위자들의 문자메시지 내역을 집중적으로 추적하면 '1.2.3.4.5' 숫자 이외에 문자가 포함된 커닝 메시지 내역이 추가로 파악될 가능성이 있다. 또 경찰이 KTF에서 보내온 자료 분석을 끝내면 의심이 가는 메시지는 더 늘어날 수 있다.

◆ 다른 지역에도 부정행위 있었나=광주 지역의 부정행위에 사용된 휴대전화가 대부분 KTF 가입자인 반면 이번에 드러난 550여건은 SK텔레콤과 LG텔레콤 가입자여서 부정행위가 광주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경찰은 550여건 가운데 광주 지역의 부정행위에 사용된 휴대전화로 보내진 메시지가 10여건밖에 안 된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또 이번에 경찰이 수사에 사용한 기법이 광주 지역의 부정행위를 찾아내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는 점도 다른 지역에서의 추가 부정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서울경찰청은 숫자만 적힌 메시지들을 골라낸 데 비해 광주 메시지에는 '형 선수 실패요' '수나형 객' 등이라는 글자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경찰은 이번에 포착된 '부정 혐의' 휴대전화 가입자의 신상을 밝히는 데는 신중한 입장이다. 문자메시지 내역이 수능시험 정답과 비슷한 점 등 수상한 측면이 있지만 다른 용도로 송.수신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메시지 교환 내용을 철저히 분석한 뒤 부정행위가 확실하다고 판단될 경우 가입자 확인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 브로커 개입했나=서울경찰청이 추가로 포착한 수능부정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해당자들은 높은 점수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광주 지역 수험생들이 메시지 전송 과정에서의 실수와 틀린 답을 받는 바람에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 대조적이다.

경찰은 이번 수사에서 '숫자 메시지' 내용이 해당 시간대 시험 과목의 1~6번 문제의 정답과 전부 똑같거나 하나만 틀린 경우만 골라냈기 때문이다. 이 메시지가 부정행위에 쓰인 것이라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상당한 실력의 소유자다.

전문 브로커가 끌어들인 명문대생이 수능시험을 치르면서 정답을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삼는 수험생이 시험 도중 이 같은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기는 어렵다. 만약 수험생 상호 간 정답을 주고받았다면 성적 우수자들이 부정행위를 공모한 것이므로 또 다른 충격이 예상된다.

김승현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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