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in 문화人] 천안 실험예술가 변영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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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화가 변영환씨는 실험정신이 투철한 영혼의 소유자다. ‘Experimental Spirit Space(실험정신 공간)’라고 부르는 화실을 돈으로 뒤덮힌 작품들이 점령했다. [조영회 기자]

2003년 서울 평창동의 한 소극장. 천안의 미술작가 변영환(54)씨는 장난감 봉고차를 들고 무대에 섰다. 장난감 차엔 1만원짜리 지폐 십여 장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변씨는 그 장난감 차를 갖고 바닥에 굴리는 등 어린이처럼 놀았다. 한나라당의 차떼기 불법 대선자금을 풍자한 퍼포먼스다.

변씨는 2002년부터 돈을 소재로 한 작품 활동에 몰입해 있다. 그는 돈에 대해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돈을 더럽다고 하지만 지폐·동전은 현대미술의 결정체로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다.” 지난해 발행된 5만원권은 이종상 화백의 신사임당 초상화가 어울려 뛰어난 조형감을 이뤘고, 종이·인쇄 물감도 최상의 것이 사용됐다.

돈은 다 똑같은 모양을 지녔지만 모두 다른 일련번호를 가진 별개 작품이라는 게 변씨의 주장이다. 변씨는 지폐·동전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런 그가 다음달 2일부터 일주일간 서울 인사동 아트센터에서 ‘돈 작품’ 첫 개인전을 연다. 전시(展示)가 아닌 이른바 전시(錢示)를 펼친다.

지역 화단 중견작가인 변씨가 처음부터 돈에 ‘환장’한 건 아니다. 점잖게 수채화를 그리던 작가였다. 그러다 일을 저질렀다. 내부에서 꿈틀대던 실험적 예술정신을 막을 수 없었다. 2000년 누드 그림을 현수막에 옮겨 거리에 내걸려고 했다. 전시실에 갇힌 작품을 들고 시민들 앞으로 나서고 싶었다. 시가 불허했다. 그러나 다음 해 가슴 등 인체 특정부위를 사실적으로 나타낸 작품은 빼고 추상화 및 선(線)으로 표현한 누드만 게시한다는 조건으로 허가가 떨어졌다. 시와 변씨가 반반씩 양보한 결과다. 절반의 승리였다.

항의 표시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했다. 침대 길이에 키가 맞지 않는 나그네를 무조건 죽인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을 통해 예술과 외설을 가늠하는 획일적 잣대에 맞섰다.

변씨는 따라하는 게 싫다. 기존 질서와 통념에 빠져 사는 것도 싫다. 세상은 넓고 모든 게 새롭다. 모두가 돈을 욕하면서 또 돈을 차지하려 안달한다. 그러나 돈은 정직하다. 변씨는 “돈으로 만든 작품은 최소한 제 값어치는 한다”며 웃는다. 1만원짜리 30장, 5만원 짜리 10장으로 만들었다면 돈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 한 작품 값어치가 80만원은 나가는 게 아니냐는 소리다.

5000원, 1만원, 5만원 지폐로 제작된 작품 ‘명품’, 돈을 쫓는 현대인을 표현한 ‘그녀의 선택’, 수채화와 지폐가 혼합된 작품 ‘코리아리랑’(왼쪽부터)

변씨 화실은 돈 천지다. 10원, 50원, 100원짜리 동전이 그에겐 물감이고 오브제다. 불상의 머리도 동전으로 뒤덮었다. “금불상도 오래 되면 다시 도금하는 개금작업을 하는데 실제 돈을 붙인다고 이상하게 볼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의 돈 작품은 현재 두 군데서 전시되고 있다. 2005년 천안시청 1층 로비에 ‘전사(錢士, :60×43×20㎝)’가 전시됐다. 10원짜리 동전 4500개를 마네킹 흉상에 접착제로 붙였다. 꼬박 3개월이 걸렸다. 시에서 370만원에 구입했으니 재료값 4만5000원(동전 합계)은 충분히 뽑은 셈이다.

변씨는 “중국 전국시대 진시황의 병마용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지금은 전국(戰國)이 아닌 전국(錢國)시대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완벽한 갑옷은 결국 돈으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변영환씨가 동전에 파묻힌 퍼포먼스 ‘상황’

변씨는 동국대 미대와 단국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그러나 캔버스에 세상의 모든 일을 담는게 힘들었다. 1999년 10월 ‘버리고, 뚫고’란 첫 퍼포먼스를 한 후 그림과 행위예술을 병행하고 있다.

2003년 그의 퍼포먼스가 유럽까지 진출했다. 변씨는 세계의 지역간, 문화간 갈등을 푸는 바람을 표현하고자 했다. 한 손에 종(요령), 한 손에 조그만 돌탑을 들고 에펠탑 주위를 도는 1인 탑돌이를 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에펠탑도 한국에서 온 불탑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특이한 예술 행위는 모두 관할 당국 허가 속에 이뤄진다. 해외 포퍼먼스 때도 꼭 가능여부를 타진한 후 실행한다. 그의 돈 작품에선 가끔 지폐·동전을 변형해야 할 때가 있다. 한국은행에 가능 여부를 문의했다. 돈은 엄연한 사유물이라 훼손해도 무방하다는 답변이었다. 예전에 돈은 깨끗하게 써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듯이 듣던 때가 있었는데….

그의 돈 작품을 곱지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돈 지랄한다.” “돈 귀한 줄을 모른다.” 맞는 소리다. 그는 돈의 노예가 아니다. 돈에 예속돼 살고 싶지도 않다. 돈을 철저히 작품 재료로 대할 뿐이다. 2005년 뉴욕에 갔을 때 맨해튼 빌딩들이 돈으로 쌓은 탑처럼 보였다. 이번 서울 전시회에선 전시실 한 가운데에 3m의 ‘기념비’를 세운다. 주위에 동전 20만 개를 깔 생각이다. 관객들은 돈(동전)을 밟고 다니며 작품으로 구경하게 된다. “관객들이 돈을 집어가면 어쩌냐”고 묻자, 그는 “요즘도 10,50,100원 짜리 동전을 줍는 사람이 있냐”고 반문했다.

그를 만나면 독특한 명함을 건넨다. 10년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땐 여인 누드 명함(위 사진)을 죽 펴놓고 고르라 하더니 이젠 소·호랑이를 그린 순화된 명함(아래 사진)을 내놨다. “나를 정형화된 인쇄 글씨체로 보여주고 싶진 않다.” 2~3일 하루종일 수제 명함을 그려 1년 내내 쓴다. “명함 많이 사용하는 기자 양반이야 직접 그려 쓸려면 힘들지만. 나야 명함 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요.”

변영환 약력

 ·동국대 미술학과 졸업
 ·단국대 대학원 회화과 졸업
 ·천안미협, 충남수채화협회 회원
 ·개인전 12회, 단체전 150여회
 ·퍼포먼스 100여 회

글=조한필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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