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 영월에서 만난 정난(靖難)의 변(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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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한국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하늘은 푸르고 신록으로 물들인 산들이 싱그럽다. 중국에서 지인이 한국을 찾았다. 조선의 6대왕이었다가 숙부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조선의 “靖難의 變”에서 희생된 端宗의 유배지를 가고 싶다고 하여 안내하였다.
서울에서 중부 고속도로를 따라 영월로 들어 갔다. 단종의 유배지는 청령포(淸泠浦)라하여 삼면이 강으로 둘러 싸여 있고 마지막 한쪽은 천애 절벽으로 되어 있어 天然의 감옥이었다. 유배된 단종이 살았다는 곳을 볼려면 나룻배를 타야 갈 수 있었다. 한강의 상류인 남한강으로 둘러싸여 유배지는 낙타의 육봉같은 가파란 산들이 숲을 안고 있어 금방 호랑이라도 나올 기세다.
단종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가장 총애한 세손으로 아버지 문종이 왕이 되자 12살에 왕세자가 되었다. 그러나 병약한 문종이 2년만에 붕어하자 단종이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그때가 14살의 어린 나이였다. 숙부 수양대군은 형님 문종의 유언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유년(1452)에 난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한다. 癸酉靖難이다.
그보다 50년 앞서 중국의 明初 朱元章의 장남은 병약하여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고 그의 아들 세손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建文帝다. 당시 北平(지금의 北京)을 지키던 숙부 燕王이 난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한다. 永樂帝가 된 燕王은 建文帝를 제거하여 후환을 없앴지만 수양대군은 단종을 멀리 영월 淸泠浦로 유배를 보냈다.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한 충신들이 모의가 계속되자 사약을 내려 단종을 죽게한다. 단종의 나이 17세였다.
건문제에게 方孝儒라는 충신이 있듯이 단종에게는 성삼문등 사육신의 충절이 유명하다. 청령포에서 멀지 않은 단종의 무덤인 莊陵에는 다른 조선왕릉에는 없는 충신들의 위패도 모셔 두고 있다.
단종이 유배지에서 멀리 서울을 그리면서 돌을 쌓아 탑을 만들었다는 望京塔을 둘러보고 5월의 하늘 어딘가 떠 돌고 있을 단종의 외로운 혼(孤魂)에 가슴이 저렸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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