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북한 상대로 등거리 외교 전략 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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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외교부 직속 연구소의 외교안보 전문가가 중국 정부를 향해 “남북한을 상대로 ‘등거리(等距離) 외교’라는 새로운 한반도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20일로 잡힌 천안함 사건 조사 발표를 앞두고 중국 정부의 태도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에서 등거리 외교란 대(對)한반도 전략이 공공연히 제기된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중국 외교부 직속 연구기구인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진린보(晋林波·사진) 연구원은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 18일자 기고문에서 ‘남북한 등거리 외교론’을 제기했다. 중국국제문제연구소는 1956년 출범한 외교부 직속 기구이며, 진 연구원은 아태연구실 주임(책임자)을 역임한 비중 있는 인물이다.

‘(중국 정부는) 남북한을 상대로 등거리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진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중·한 관계와 중·북 관계를 동시에 유지하고 중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을 상대로 등거리 외교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냉전의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군사적 긴장 대치 상태에 처해 있는 남북 양국과 동시에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문제는 중국 입장에서 거대한 정치적 난제이자 외교적 시험대”라고 규정했다. 이어 “천안함 침몰 사건에 북한이 연관됐는지, 중국 정부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문을 왜 받아들였는지를 놓고 언론 보도가 쏟아지면서 중국이 한반도에서 어떤 역할과 작용을 해야 할지에 대해 논란이 유발됐다”며 등거리 외교론를 제기한 배경을 설명했다.

진 연구원은 새로운 한반도 전략의 수립 기준으로 세 가지 요소를 꼽았다. 먼저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평화·안정·번영에 유리한지, 다음으로 중·한, 중·북 관계를 동시에 증진하는 데 유리한지, 끝으로 중국 스스로의 장기적 이익을 명확히 설정하고 단호하게 지켜내는 데 유리한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세 가지 요소 중 중·한, 중·북 관계를 동시에 증진하는 문제가 가장 어렵다”며 “남북한의 의견이 대립하고 이익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남북의 요구와 바람을 동시에, 완전하게 만족시키는 것은 더욱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천안함 사건에 대해 진 연구원은 “한국은 ‘옳은 것을 옳다’고 (중국이) 말해주길 바라지만, 북한은 이미 공개적으로 ‘천안함과 무관하다’고 발표한 상태”라면서 “한국의 조사 결과 발표가 나오면 북한이 한 걸음 더 반박할 것이고 중국으로서는 남북한이 주장하는 논거를 기초로 스스로 판단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김정일 방중과 천안함 논란 와중에 중국이 보여준 태도에서 등거리 외교 의도가 일부 엿보였다”며 “향후 중국의 외교 향방을 읽는 데 주목할 만한 시각”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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