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12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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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28. 열반송 <끝>

큰스님들은 한시(漢詩)의 형식을 빌려 삶의 고비를 노래한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출가할 때 부르는 출가송(出家頌), 깨달음의 환희를 노래하는 오도송(悟道頌), 그리고 마지막으로 열반의 세계로 들어갈 때의 열반송(涅槃頌)이다. 오랜 세속의 먼지를 털고 떠나는 순간에 부르는 열반송은 평생의 구도행을 정리하는 노래로 중시된다. 성철 스님은 1993년 가을 세상과의 인연이 다했음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生平欺誑男女群하니(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彌天罪業過須彌라(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活陷阿鼻恨萬端이여(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一輪吐紅掛碧山이로다(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선가(禪家)특유의 은유와 반어법으로 부른 노래라 자칫 오해하기 쉽다. 실제로 일부에선 성철 스님의 열반송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시 엉뚱한 해석을 더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표적인 오해는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와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라는 대목이다. 일부 타종교계에선 '성철 스님이 말년에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내심 말 못하는 갈등으로 괴로워하며 방황하다가 결국 지옥으로 떨어졌다'는 해석을 퍼트리기도 했다. 심지어 이같은 엉터리 해석을 책으로 출간한 사람까지 있었다.

성철 스님은 은유.반어법에다 덧붙여 말을 극도로 압축해 내뱉기로 유명하다. 큰스님이 종정으로 취임하고 처음 세상에 알려진 육성은 MBC와의 인터뷰다.

"전국 불자들에게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한 말씀…. 내 말에 속지 마라. 내 말 말이야, 내 말에 속지 마라, 그 말이야!"

육성 그대로 전국에 방송됐다. 그 때도 말들이 많았다. "듣기 좋은 말씀을 해야지. 종정스님이 '내 말에 속지 마라'고 하시다니"하는 안타까움, 나아가 "스님은 거짓말만 하고 사나"하는 비난까지 들려왔다.

평소 성철 스님의 화법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큰스님은 설법하면서 늘 "누구나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이 있다고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부처님 가신 길을 가면 누구나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개발하여 쓸 수 있습니다"며 참선수행을 강조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내 말에 속지 마라"의 뜻은 "종정이라지만 난들 별 사람이냐. 나를 보고 무엇을 얻으려 하지 말고 각자 가지고 있는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스스로 개발하라"는 당부다.

열반송의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반복하자면 "사람들이 자기 속에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그것을 개발하려 노력하지 않고 나만 쳐다보니, 결국 내가 그들을 속인 꼴"이란 얘기다. 그러니 "나를 쳐다보지 말고, 자기 자신을 바로 봐라. 마음 속에 있는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개발하라"는 가르침이다.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라는 말은 "모든 중생들을 깨우치지 못하고 떠나니 섭섭하기 짝이 없다"고 풀어야할 것이다.

마지막의 "둥근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는 입적의 순간을 '낙조(落照)'로 표현한 은유다.

성철 스님은 가야산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던 1993년 11월 3일 입적을 예감하고 열반송을 남겼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동창이 뿌옇게 밝아올 무렵, 크게 숨을 몰아 "참선 잘 하그래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붉은 기운을 토해내고 푸른 산그림자 뒤로 사그라지는 장엄한 낙조처럼.

그로부터 8년의 세월이 지났다. 세월이 가도 매년 이맘때면 큰스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큰스님 살아 계실 적에 '오늘은 어떻게 큰스님의 호통을 피해가나'만 생각했던 부끄러운 상좌가 겁없이 큰스님 얘기를 시작했다. 큰스님의 가르침에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지 않았나하는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글을 마감한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원택 합장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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