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24시] 고이즈미식 '상생 정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일본 최대 야당인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대표가 28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를 찬양하는 만세를 부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도쿄(東京)에서 열린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장 회의에 고이즈미와 함께 내빈으로 참석한 하토야마는 행사 도중 주최자가 "총리의 개혁성공을 위해 만세삼창을 하자"고 제안하자 이에 따른 것이다.

하토야마는 "의례적인 것인 데다 그냥 앉아 있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했다"고 해명했지만 하토야마의 고이즈미에 대한 '애정'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 됐다. 하토야마는 지난 21일 일본 당수 토론에서 "고이즈미의 구조개혁을 응원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해상자위대가 태평양전쟁 이후 처음으로 미군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인도양으로 출발한 다음날인 지난 26일 국회에서 해상자위대 파견 승인 여부에 대한 표결이 있었다. 하토야마는 이 때도 당내 일부 반발을 무릅쓰고 찬성표를 던져 민주당 내분과 다른 야당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다.

하토야마의 이런 '돌출행동'이 소신인지 계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이즈미의 민주당 껴안기 전략이 주효한 점도 있다. 민주당에 대한 고이즈미의 태도는 지난달 28일 자민당이 보궐선거 두곳에서 승리, 단독으로 중의원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이후 급격히 달라졌다. 이전만 해도 고이즈미는 연립여당인 공명당에 발목이 잡혀 민주당과 대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보궐선거 이후 고이즈미는 중의원 선거구 일부 부활을 요구하는 공명당을 물리치는 등 민주당 주장을 상당부분 수용하고 있다. 지난 25일 해상자위대 파견에서 최신예 호위함인 이지스함이 제외된 것도 민주당의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다.

자민당은 당초 정보수집이란 명분 아래 이지스함 파견을 적극 검토했다. 미국측도 이를 요구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반대하자 고이즈미는 막판에 보류키로 했다. 하토야마는 "자위대 파병 승인안에 찬성하겠다"며 화답함으로써 사실상의 고이즈미-하토야마 공조체제가 탄생했다. 개혁을 놓고 자민당 일각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있는 고이즈미로선 큰 원군(援軍)을 만난 셈이다.

일본정치는 흔히 '밀실정치'라고 비판받고 있지만 대화와 타협의 미덕도 갖고 있다. 당장 힘이 있어도 미래의 더 큰 목적을 위해 한발짝 물러날 줄도 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죽기살기로 밀어붙이는 한국의 '독단정치'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오대영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