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죽느냐, 사느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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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준결승전 1국>
○·쿵제 9단 ●·구리 9단

제 6 보

제6보(71~80)=위기란 어떤 식으로 다가오는가. 가만 보면 위기는 체면 또는 자존심과 상당한 연관이 있다.

구리 9단은 강자다. 세계 바둑에서 1~4위 사이를 벗어난 적이 없는 실력자다. 하지만 그는 쿵제 9단이 던진 백△를 보며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고 있다. 지금이라도 ‘참고도1’ 흑1로 물러서야 하는가. 물러서면 우하는 다 흑집이니까 아무튼 장기전은 된다. 하지만 백2의 젖힘이 너무 아파서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애당초 ‘참고도2’ 흑1로 물러서면 아무 일 없는 곳이었다. 이 후퇴가 싫어 시작한 전쟁인데 이제 와서 그렇게 물러선다면 말이 안 된다. 체면이 망가지고 자존심이 상해서 견딜 수 없다.

구리는 71로 쭉 뻗어버렸다. 오랜 전투 경험으로 1% 불리한 싸움임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1%는 다른 것, 즉 ‘힘’으로 메우면 된다. 쿵제 9단은 구리의 심사가 읽히는 듯 희미하게 미소를 흘리고 있다. ‘참고도1’이면 가장 편했지만 상대는 피를 원한다. 좋다. 바둑이란 어차피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것. 72 끊고 74로 회돌이를 쳐 80까지 흑진 속으로 뚫고 들어갔다. 이젠 죽느냐, 사느냐만 남았다(79=이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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