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제 9단 ●·구리 9단
제 6 보
구리 9단은 강자다. 세계 바둑에서 1~4위 사이를 벗어난 적이 없는 실력자다. 하지만 그는 쿵제 9단이 던진 백△를 보며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고 있다. 지금이라도 ‘참고도1’ 흑1로 물러서야 하는가. 물러서면 우하는 다 흑집이니까 아무튼 장기전은 된다. 하지만 백2의 젖힘이 너무 아파서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애당초 ‘참고도2’ 흑1로 물러서면 아무 일 없는 곳이었다. 이 후퇴가 싫어 시작한 전쟁인데 이제 와서 그렇게 물러선다면 말이 안 된다. 체면이 망가지고 자존심이 상해서 견딜 수 없다.
구리는 71로 쭉 뻗어버렸다. 오랜 전투 경험으로 1% 불리한 싸움임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1%는 다른 것, 즉 ‘힘’으로 메우면 된다. 쿵제 9단은 구리의 심사가 읽히는 듯 희미하게 미소를 흘리고 있다. ‘참고도1’이면 가장 편했지만 상대는 피를 원한다. 좋다. 바둑이란 어차피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것. 72 끊고 74로 회돌이를 쳐 80까지 흑진 속으로 뚫고 들어갔다. 이젠 죽느냐, 사느냐만 남았다(79=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