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계 로비의혹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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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검 중수부는 26일 한화그룹이 일부 계열사 등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해 이 중 일부를 대한생명(대생) 인수를 위한 로비자금으로 사용한 단서를 잡고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한화 측이 2002년 9월 대생 인수를 전후해 당시 정치권과 경제부처 관료들을 상대로 금품 로비를 벌였다는 첩보에 대해서도 확인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한화그룹 측이 한화건설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가 있어 조사를 벌이고 있다"면서 "김승연 회장의 측근인 K이사가 2002년 당시 청와대의 한 비서관을 통해 대생 인수를 위해 정치권 등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는 첩보가 있다"고 말했다. K이사는 대생 인수 직후 캐나다로 건너가 현재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으며, 청와대 비서관도 현재 외국에 머물고 있다.

검찰은 한화가 지난 대선 전에 구입한 80억원어치의 채권 가운데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20억여원어치와 새로 드러난 10억원어치 등 모두 30여억원 상당의 채권이 문제의 로비자금으로 사용됐는지를 캐고 있다.

검찰은 대생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김승연(52) 회장과 김연배 전 구조조정본부 사장(현 한화증권 부회장) 등 한화그룹 관계자 7~8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검찰은 조만간 김 전 사장과 대생 인수에 직접 관여한 구조조정본부 간부 L씨 등을 소환키로 했다.

이에 앞서 검찰은 이달 초부터 그룹 계열사 관련 계좌에 대한 자금추적 작업을 벌여왔다. 검찰은 한화 구조조정본부와 한화건설 관계자들을 소환해 일부 혐의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찰은 한화가 대생 인수를 위해 외국회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과정에서도 일부 불법 사실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이에 대해 한화 측은 "채권을 구입한 자금은 계열사를 통한 비자금이 아니라 김 회장의 개인 재산"이라며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20억여원은 김 회장이 친구에게 빌려준 것"이라고 밝혔다. 또 로비설에 대해 "대생 인수는 국제 공개경쟁 입찰로 진행됐고, 로비를 해서 성사될 일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 서청원 당시 대표에게 10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6월을 선고받았으나 지난 24일 열린 2심에서는 벌금 3000만원으로 감형됐다.

하재식.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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