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쌀개방 앞당겨 미리 체질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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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농업지표만 보면 우리 농민은 그래도 일본보다 나은 편이다. 일본 농민들은 이미 1998년부터 쌀수매.시판가격이 함께 급락하면서 소득도 줄고 있다. 그래도 별 시위가 없었다. 문화적 차이도 있지만 그만큼 국가정책에 대한 농민의 이해와 인내심이 크다는 얘기도 된다."

21일 정부 과천청사 앞 농민시위를 지켜본 한 농업전문가의 말이다. 일본은 우루과이 라운드(UR)로 농산물 시장개방이 시작된 뒤 정부가 쌀수매가격을 낮췄고 벼 재배면적도 줄었다.

일본 농민들은 농업 외에 취업하거나 음식점.관광업.판매업 등을 겸하기 때문에 농업외 소득의 비중(82%)이 한국농가(52%)보다 높다.

하지만 쌀값 하락에 경기침체의 여파로 94년 연간 9백만엔이었던 농가소득은 99년 8백45만엔으로 낮아졌다.

일본은 일종의 전량 수매제인 식관법(食管法)을 UR출범 직후 없애고, 95년부턴 시장가격제를 도입한 식량법(食糧法)을 시행했다.

생산량 중 절반 정도는 시장판매를 통해 유통되도록 해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품질개선과 쌀의 브랜드화를 이끌었다. 소득감소분에 대해 보조금이 지급됐지만 당하는 농민으로선 힘들었다.

일본의 쌀정책 변화는 UR 때문이다. 일본은 선진국으로 분류돼 2000년말까진 의무적으로 외국에서 쌀을 일정량 수입하고 2001년부터 완전 개방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에 비해 한국과 필리핀은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아 2004년까지 일정량 수입하는 조건으로 시장개방을 유예받았다.

그런데 일본은 개방일정을 1년8개월 앞당겨 99년4월 '완전 개방하되 관세를 매기는' 관세화를 선언했다.

국내 쌀생산이 늘어난데다 의무적으로 수입한 쌀까지 겹쳐 재고가 급증하는 판에 어차피 개방할 것이라면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미리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한국은 UR협상에서 10년의 시간을 벌었는데도 정책방향이 일본과 달랐다. 일본은 일찌감치 농업 구조조정에 들어갔는데 한국은 생산성 향상과 기계화.생산기반 확충으로 공급을 늘렸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떨어져야 하는데 정부는 수매제도를 통해 높은 가격을 유지했다. 그 결과 벼농사가 '돈 되는 사업'으로 자리잡았고, 최근 2년사이 논면적은 줄어도 벼 재배면적이 늘어나는 현상(밭벼 생산량 증가 때문)도 나타났다.

농촌경제연구원 이정환 부원장은 "일본은 수매가를 낮추면서 농민의 소득안정 대책을 함께 마련했다"면서 "우리도 하루 빨리 쌀시장에 시장원리를 도입하되 직불제 등 소득보조금을 늘려 구조조정을 유도하면서 좋은 품질의 쌀생산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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