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쓴 꼬마일기] 2001년 11월23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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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요즘 우리들 사이에 탑브레이드 팽이 놀이가 한창 유행이다.

5백원짜리 팽이부터 몇 만원하는 팽이까지, 또 조정기에 꽂아서 눌러 돌리는 팽이, 조정기에 긴 톱날 같은 줄을 끼워 세게 빼면서 돌리는 팽이 등 정말 다양하다.

그리고 팽이만 있는 게 아니다. 팽이 돌리는 판까지도 판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팽이를 가지고 오지 못하게 하시지만 아이들은 선생님 몰래 몰래 구석에서 팽이 싸움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디지몬 카드가 유행이었다. 그래서 디지몬 카드를 모으려고 안달을 했었다.

디지몬 카드는 백화점에서는 굉장히 비싸지만 문방구에서는 5백원이면 8장의 카드를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카드를 문방구에서 골라 사서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디지몬 카드를 얻으려고 친구들과 바꾸기도 하고, 카드 뒤집기 같은 놀이를 하면서 카드를 모았었다. 나도 역시 엄청 많이 모았었다.

그런데 이제 유행이 바뀌어서 그 많은 카드가 별로 쓸모 없게 되었다.

사실 디지몬 이전에는 포케몬 카드가 유행이어서 포케몬 카드도 서랍 가득 썩고 있다.

유행이 지난 카드나 장난감들은 동생에게 주어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동생 기범이도 유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서 내가 안 가지고 노는 것은 가지고 놀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유행하는 것들을 사서 모으는 걸 싫어하신다. 그런 것을 보면 누가 유행을 만들어 내는 것인지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별로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이런 것을 알면서도 나는 엄마 눈치를 보면서 내 용돈으로 산 5백원짜리 팽이와, 할머니.이모.사촌 형이 사 준 팽이를 벌써 여러 개 가지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으니 동생 기범이도 벌써 몇 개를 가지고 있다. 여러 종류의 팽이를 가지고 있어야 친구들과 팽이 치기를 할 수도 있고 말도 통한다.

그래서 내 마음은 항상 두근두근하다. 언제 유행이 바뀌어서 이 팽이들이 쓸모 없게 될지.

김지희 <서울 용화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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