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김홍일 사퇴' 꺼냈다 물린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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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에선 21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장남인 민주당 김홍일(金弘一)의원의 의원직 사퇴문제가 거론됐다.

장광근(張光根)수석 부대변인은 정성홍(丁聖弘.52)전 국정원 경제과장이 언급한 金의원과 '건달들'의 관계를 지적하면서 "상당수 국민은 金의원이 대통령과 정권을 위해 의원직을 내놓고 정권이 끝날 때까지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는 논평을 냈다.

金의원은 내년 1월부터 약 두달 동안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에 가 있을 계획이다. 張부대변인의 주장은 전날 金의원의 대(對)국민 사과를 요구한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의 논평보다 더 나간 것이다. 그러나 고위 당직자들은 "金의원 사퇴를 당이 공식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고 발을 뺐다.

김기배 사무총장은 "金의원이 정성홍씨와 알고 지낸 사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깡패들과의 유착이나 권력형 비리 연루 의혹 등에 대해선 강력히 부인하는 만큼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金총장은 "金의원의 문제가 좀더 드러났을 때 책임을 묻는 게 옳다"고 덧붙였다.

이재오 원내총무도 "金의원 사퇴 문제를 이회창(李會昌)총재와 의논한 적이 없다"며 "아직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다"고 했다.

이런 기묘한 상황이 발생한 데는 까닭이 있는 듯하다. 신건(辛建)국정원장.신승남(愼承男)검찰총장 퇴진을 관철하기 위한 압박카드로 金의원 사퇴문제를 꺼낸 것이란 얘기다.

李총무도 "국정원과 검찰을 이 꼴로 이끈 두 책임자가 스스로 그만두지 않거나 대통령이 그들을 해임하지 않을 경우 화살은 金의원을 비롯한 대통령 주변에게까지 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金의원을 지나치게 몰아붙일 경우 金대통령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음직하다.대통령의 분노는 대선을 치러야 하는 야당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金의원 문제를 본격 거론하는 것을 마냥 삼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李총무는 "김홍일 의원이 미국에 가는 것은 병 치료를 위해서라기보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의 수사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 권력형비리조사특위 소속인 홍준표(洪準杓)의원도 "정성홍씨가 金의원과 조폭의 유착 얘기를 꺼낸 것은 자신을 구속하면 金의원의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협박하기 위한 것"이라며 "金의원이 특검 수사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대변인실이 이날 "민주당 김방림 의원은 진승현 게이트의 '몸통'을 연결하는 고리에 불과하며, 진짜 로비자금은 이 몸통에게 전달됐을 것"이라는 논평을 낸 것도 결국 특검 수사 대상을 金대통령 주변까지 확대하는 방향으로 몰고갈 것임을 시사한다.

이상일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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