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뉴욕] 미국 "올 추수감사절은 추수원망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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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대학생인 마이크 노르우드(19)는 22일인 추수감사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귀향하면서 기차를 탔다. 전 같으면 비행기로 워싱턴의 집으로 날아갔겠지만 9.11 테러 이후 워낙 비행기 타는 것을 불안해 하는 부모님을 생각해 눈 딱감고 하루가 꼬박 걸리는 기차를 탄 것이다.

9.11 테러 이후 처음 맞는 미국의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예년과 크게 다른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이동인구가 크게 줄었다. 불안심리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협회(AAA)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집에서 80㎞ 이상 벗어나겠다는 사람은 3천4백60만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보다 6% 감소한 것이다. 또 '손수 운전해 귀향하겠다'고 답한 사람(87%)도 지난해보다 1.6% 줄었다.

9.11 테러의 최대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아메리칸 에어라인 등 두 항공사는 추수감사절인데도 운항 횟수를 지난해 대비 23%, 20%씩 줄였다. 그러나 텅텅 비어서 간다. 제2테러에 대한 걱정, 공항의 삼엄한 경비와 강화된 안전검색 등 불편함 때문에 항공기 여행을 꺼리는 분위기가 늘어난 탓이다.

고향을 찾는 인구도 줄었다.예년 같으면 귀향인파가 미국 인구의 3분의1 수준인 1억명쯤 됐지만 올해는 80%선에 머물렀다. 테러가 이산가족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쇼핑가도 한산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해지면서 물건 구입을 홈쇼핑으로 대신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추수감사절인데도 칠면조 판매가 부진해 사육업자들은 울상이다.

자영업을 하는 미국인들에게 "일년중 하루를 쉰다면 어떤 날인가"라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추수감사절을 꼽는다.

기업들도 추수감사절 연휴 전날은 조기퇴근을 눈감아 줄 정도다. 각박한 세상에서 가족사랑을 나눌 유일한 때가 추수감사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국 이래 가장 우울한 분위기가 되는 바람에 "올 추수감사절은 '추수감사절'이 아니라 '추수원망절'이 됐다"는 푸념도 들린다.

신중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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