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7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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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실로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무진이 입술(脣)이라면 청해는 이(齒)와 같은 곳으로 장보고를 살피고, 장보고와 친교를 맺어두려면 무진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김양의 말에는 참으로 깊은 뜻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말에서 나오는 내용으로 즉 '서로 의지하는 가까운 사이에 놓여 있으면 한편이 망하면 다른 편도 온전하기 어려운 관계'임을 뜻하는 비유인 것이다.

광대뼈와 아래턱뼈가 서로 의지하고 있다 해서 이를 '보거상의(輔車相依)'라고도 하는데 김양의 말은 장보고가 이라면 자신이 입술이 되기 위해서, 또한 장보고가 아래턱이라면 자신은 광대뼈가 되기 위해서 무진의 도독으로 갈 수밖에 없음을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 됐다."

세번째 질문을 다하고 김양을 통해 이에 대한 답변을 모두 들은 김균정은 다시 깊은 침묵에 잠겼다. 오랜 침묵 끝에 김균정이 불쑥 입을 열었다.

"야심한데 이제 위흔은 그만 가보아라."

밑도 끝도 없는 작별인사였다.

그러자 김양은 망설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김균정을 향해 삼배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천천히 읍을 하고 나서 인사를 하였다.

"소인 이만 물러가나이다, 나으리.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어 만강하시옵소서."

뒷걸음으로 김양이 물러간 후 기다렸다는 듯 볼멘소리로 아들 김우징이 입을 열었다.

"어찌하여 아버님께오서는 저 자를 편애하여 끼고 도시나이까. 저 자가 이처럼 무시로 아버님을 뵙기 위해서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남들의 눈에는 가시처럼 보이실 것이나이다. 예부터 '안중지정(眼中之釘)'이라 하지 않았나이까. 저 자는 눈 속에 들어있는 못이나이다. 반드시 빼내어야만 후환이 없을 것이나이다."

"우징아."

묵묵히 듣고 있던 김균정이 물끄러미 아들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말씀하십시오, 아버님."

"위흔을 무진의 도독으로 보내거라."

순간 김우징은 크게 놀라면서 아버지를 마주보았다.

"한시라도 지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즉시 위흔을 중원의 대윤에서 무진의 도독으로 전임시키거라."

"아니되옵니다, 아버님."

김우징이 머리를 흔들면서 말하였다.

"아버님께오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 자가 있었던 고성의 태수도 사지(舍知)에서 아찬까지의 계급에 있던 사람들만 임명되는 중요한 요직이나이다. 또한 중원경의 대윤도 사신(仕臣)이라고 불리는 중요한 관직이었나이다. 하오나 도독(都督)이라함은 지방장관을 이르는 말로 특히 반적의 땅인 무진에 반적의 후손인 김양을 도독으로 내려 보낸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나이다. 만약 김양을 무진의 도독으로 내려 보냈다가 아버님과 소자가 무고의 죄를 입게 되면 그때는 어찌하시겠나이까."

"우징아."

묵묵히 아들 우징의 말을 듣고 있던 김균정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한 것이다. 나야 이미 수즉다욕하였다. 이만큼 살았으면 오래 살았고, 오래 살았으니 욕된 일도 많이 있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오래 살고 싶지 않고, 더 이상의 영화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너는 아직 젊으니 남은 인생도 많이 있고, 해야 할 일도 많이 남아있지 않느냐."

수즉다욕(壽則多辱).

이는 『장자』에 나오는 유가(儒家)를 비꼬는 말로 성천자(聖天子)로 이름 높은 요(堯)임금이 순행길에 화(華)라는 변경에 이르러 관원과 만나 나누었던 말에서 비롯되었다. 그곳의 관원이 임금을 공손히 맞으며 이렇게 축수하였다.

"부디 장수하십시오."

그러자 요 임금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나는 장수하기를 원치 않소."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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