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뉴스] '서울시청 앞 광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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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02년 6월.

삼삼오오 모여든 붉은 점들

순식간에 파도로 넘실대더니

환호와 열기의 넓은 마당,

광장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모여 하나 될 때

더욱 아름답다는 믿음이

4000평의 넓은 뜰,

시청 앞 광장을 만들었습니다.

3.1운동으로 이어진

고종 황제의 장례식,

잃었던 조국을 되찾은

해방의 환희,

반독재를 꿈꾸던

민주화 운동의 물결…

이곳에 모였던 사람들은

역사를 바꿨습니다.

2004년. 역사를 내 편으로

돌리고 싶은 이들

하나둘씩 광장에 모여듭니다.

나라가 걱정이라는

불안한 노심(老心),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투철한 신심(信心),

쌀만은 지켜야 한다는

성난 농심(農心)이

이곳을 가득 메웁니다.

세월의 지혜를 전할

나지막한 목소리도

조용히 기도 드릴 외딴 방도

분노 삭이고 대안 찾는 노력도

광장 앞에선 묻혀버립니다.

그래서 모두가 하나 되는

이 공간은 점점 작아집니다.

이렇게 사람에 치이고 밟혀

너무 지쳤는지 광장이 생긴 지

1년이 안 돼 문을 닫는답니다.

넓은 마당을 열었지만

'나'를 낮출 넓은 생각도

'너'를 품을 넓은 마음도

'우리'로 하나 될 희망도 없어

서울시청 앞 광장은

'당분간 휴업'이랍니다.

그런데 사람 없는 광장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서울시는 최근 "정치적인 집회가 문화광장의 기능을 해치고 외국인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주고 있다"는 이유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의 집회를 금지키로 했다.

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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