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11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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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19. 시주는 남모르게

성철 스님은 '수행 않고 신도들 길안내하는 스님'을 싫어했듯이, '시주하고 그걸 자랑하는 신도'또한 싫어했다. 큰스님은 특히 절 입구에 서 있는 석등이나 기둥들에 시주자 이름을 버젓이 적어놓는 것을 영 마뜩찮게 생각했다.

문제는 그런 큰스님의 뜻이 확고한 만큼 시주를 받아야하는 주지와 소임자들의 처지는 더 곤란해지기 마련이다. 막상 시주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선행이 어떤 형태로든 남길 바라기 마련이다.

이런 소임자들의 불만이 아무리 크다해도 성철 스님은 들은 체도 않았다. 그리고 수시로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주며 '시주의 익명성'을 강조했다.

"6.25 직후 마산(馬山) 근방 성주사라는 절에서 서너 달 살았거든.처음 가보니 법당 위에 큰 간판이 붙었는데 '법당 중창시주 윤○○'라고 굉장히 크게 씌어 있는 거라. 그래서 내가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마산에서 한약방 하는 사람이라데. 그 사람 신심(信心)이 깊어 법당을 모두 중수했다는 거라."

그 모양을 그냥 지나칠 성철 스님이 아니다. 성철 스님은 "그 사람이 언제 여기 오느냐"고 물었다. 이미 성철 스님의 이름이 불자들 사이에선 상당히 알려진 상황이라 "스님께서 오신 줄 알면 내일이라도 곧 올 겁니다"는 대답이다. 과연 그 이튿날 윤씨가 절을 찾아와 성철 스님에게 인사하러 왔다. 성철 스님이 물었다.

"소문을 들으니 처사의 신심이 퍽 깊다고 다 칭찬하던데, 나도 처음 오자마자 법당 위를 보니 그걸 증명하는 표가 얹혀 있어서 대단한 줄 알았제."

처음에는 칭찬인 줄 알고 윤씨가 웃음으로 감사를 표했다. 성철 스님의 따가운 지적이 바로 이어졌다.

"그런데 간판 붙이는 위치가 잘못 된 것 같데이.간판이라카먼 남들 마이 보라고 만드는 건데, 이 산중에 붙여두어야 몇 사람이나 와서 보겠노.그라이 저거 떼 가지고 마산역 광장에 갖다 세워야 안되겠나. 내일이라도 당장 옮겨보자고."

그제서야 말뜻을 알아듣고 얼굴이 화끈해진 윤씨가 성철 스님 앞에 엎드렸다.

"아이구, 스님. 부끄럽습니다."

성철 스님의 꾸중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처사가 참으로 신심에서 돈 낸 거요? 간판 얻을라고 돈 낸 거제!"

"잘못했습니다. 제가 몰라서 그랬습니다."

"몰라서 그랬다고? 몰라서 그런 거야 뭐 허물이랄 수 있나. 이왕 잘못된 거 우짜면 좋겠노."

직접 시정하라는 지시다. 윤씨는 서둘러 자기 손으로 그 간판을 떼어내 탕탕 부수어 부엌 아궁이에 넣어버렸다.

이런 얘기를 들은 신도들이 어찌 큰스님 앞에서 시주의 공을 내세울 수 있겠는가. 그런데 큰스님 정도로 법력이 되니까 그 시주자가 두말 없이 항복하지만, 웬만한 스님이 말해서는 거꾸로 시주자의 반감을 살 가능성이 더 큰 것이 현실이다. 거꾸로 성철 스님의 경우 그런 호통을 치면서도 시주자들의 진심 어린 보시를 이끌어내는 것이 또 가능하다.

성철 스님이 대구 파계사 부속 성전암에 머물 당시 얘기다. 큰절인 파계사 대웅전에 비가 줄줄 샜다. 이를 수리하는 불사(佛事)를 해야하는데 마땅한 시주자가 없었다. 파계사에 신세를 지고 살던 중 그런 사정을 듣게 된 성철 스님이 나섰다. 잘 아는 신도에게 "절대 겉으로 나서지 말고, 심부름은 동업이(천제 스님)가 할 테니 그리 알고 파계사 대웅전 중수불사를 맡아주시오"라고 당부했다.

그 시주자는 성철 스님의 당부대로 전혀 나서지 않은 가운데 대웅전 중수에 필요한 돈을 지원, 마침내 대웅전이 새 모습으로 단장을 끝냈다. 시주 당사자는 자신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결과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정식 낙성식이 열리기 전 파계사 대웅전을 찾아 부처님께 108배를 올렸다. 그 때 문이 벌컥 열리며 호통소리가 났다.

"어떤 보살인데 허락도 없이 법당에 들어와 멋대로 기도하느냐□"

그 보살은 "아이구, 예. 스님, 잘못했습니다"하고는 도망치다시피 성전암으로 달려왔다. 성철 스님에게 그 얘기를 했다.

"큰스님, 제가 시주자인 줄 알았더라면 그 스님이 얼마나 반갑게 맞이해 주었겠습니까□ 칭찬받고 오는 것보다 야단맞고 오니 훨씬 더 마음이 가뿐합니다."

성철 스님이 박장대소 했다.

"바로 성전으로 왔으면 됐지, 보살이 자랑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큰법당에 들렀은께 야단맞았지. 하하하."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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