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속뜻 읽기] 4. 까마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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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월요일 아침부터 까마귀 이야기를 꺼낸다고 '재수없네'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까마귀를 재수없는 새라고 생각한 것은 한국인의 문화인식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재수없다는 것은 바로 까마귀가 죽음을 상징하는 새로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래부터 까마귀를 죽음의 새라고 인식했을까. 분명하게 그것은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그렇다면 까마귀는 무엇을 상징하는 새였을까.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태양을 보면 가운데 검은 색으로 그려진 것이 나타난다. 그것을 자세히 보면 다리가 세 개 달린 까마귀로서 이 새의 이름은 삼족오(三足烏)다. 태양 속에 무슨 까마귀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만하다. 이처럼 태양을 까마귀로 상징화하는 것은 고대 문화에서 흔히 나타난다.

신라의 '연오랑 세오녀(延烏郞 細烏女)'에서도 까마귀가 태양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동해가에 살고 있던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신라에는 해와 달이 없어지는 괴변이 생겨났다.

왕이 사신을 보내 연오랑을 찾았더니, 하늘의 뜻으로 바다를 건너왔다고 하면서 세오녀가 짠 비단을 건네 주었다. 사신이 신라로 돌아와 이를 제사했더니 다시 해와 달이 생겨났다고 한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둘 다 이름에 까마귀 오(烏)를 쓰고 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까마귀를 밝음의 상징으로 이해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까마귀가 죽음을 알려주거나, 또는 불길함의 상징으로 나타난 것은 오행과 관련한 색의 이미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북쪽을 가리키는 색은 검정색이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데려간다는 저승사자가 입는 옷의 색도 검정이다. 이러한 검정색의 이미지가 그대로 투영된 새가 바로 까마귀다.

이런 관념은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확실히 정착되었다. 그 이유는 주자가 『시경』 '북풍'에 나오는 까마귀를 불길한 새로 여긴 것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주자가례』를 의례의 근간으로 삼은 유학자들은 이런 주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시조에서 까마귀를 간신에 비유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까마귀는 한편으론 효의 상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까마귀는 성장해서 새끼 때 어미가 키워준 은혜를 잊지 않고 늙은 어미새를 위해 먹이를 물어다 준다는 것이다. 이것을 반포(反哺)라고 하여 효를 깨우쳐 주는 새로 생각했다. 불효를 반성하기 위해서 까마귀를 등장시킨 시조가 많이 남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또한 건망증이 심한 사람을 두고 "까마귀고기 먹었나"라고 빈정거리기도 한다. 이것은 까마귀의 색이 검정색, 즉 먹물의 색과 같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머리 속이 빈 사람과 마찬가지로 머리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성한 날짐승이었던 까마귀가 죽음을 상징하는 새로 전락한 이유는 색깔에 대한 인식변화를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이 죽음의 새가 현재에 와서는 몸에 좋다고 하여 남획의 대상이 되어 보기 힘들어진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다.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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