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작한 제주해군기지 사업 재검토를 공약에 넣으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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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지방선거 “막무가내로 공약에 포함시키라고 하는데 그냥 받아들일 수도 없고, 난처한 경우가 많습니다.”

6·2지방선거에서 제주지사 후보로 나선 A후보 측 관계자는 “살벌한 선거판인데 후보 이름이 나가선 절대 안 된다”면서 속내를 털어놨다. 고민은 이달 초 제주도 내 17개 시민단체가 모여 ‘제주유권자연대’를 출범시키면서 시작됐다. 이들 단체는 후보에게 ▶제주해군기지 재검토 ▶영리병원 추진 중단 ▶무상급식 실현 등의 3대 핵심의제를 공약으로 채택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찬반 논란이 심했던 해군기지의 경우 이미 사업이 가시화된 상황이라 재검토를 공약으로 넣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A후보 측 관계자는 “그렇게 못 한다고 하면 낙선운동이라도 벌일 분위기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선거가 가까워지면서 각종 시민·사회단체의 공약 채택 요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사실상 수용이 어려운 것들이다.

대구의 40여 개 장애인 관련 단체 모임인 ‘420 장애인 차별철폐 대구투쟁연대’는 이달 7일부터 대구시청 앞 주차장에서 매일 50∼70명의 회원이 참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장애인용 무상 전세주택 보급 ▶장애인의 활동보조 시간과 대상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 회원은 11일 경북대에서 열린 일자리 창출 관련 행사장에서 요구사항의 수용을 요구하며 김범일 대구시장의 셔츠를 잡아당기는 등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시청 앞 도로까지 점거하는 등 선거철을 맞아 과도하게 장애인 복지 문제를 이슈화하고 있다”며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주생협·제주생태보육협회 등 42개 제주의 시민사회단체도 최근 “화산암반수와 풍부하고 다양한 생물종 등을 활용해 제주를 자연치유의 메카로 만드는 정책구상을 공약화하라”고 도지사와 도의회 의원 후보들에게 요구했다. 이들은 또 제주특별자치도법을 개정, 침구사 등 자연치유의학 관련 자격제도를 신설할 수 있도록 의료법 관련 특례 규정을 둬 자연치유 의료행위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나오자 오히려 사회단체 간에 갈등도 벌어졌다. ‘자연치유 메카 조성’ 등에 대해 제주도한의사회가 곧바로 성명을 내고 “제주를 자연치유 의료의 실험장으로 만들려는 발상인 데다 생명을 볼모로 한 무책임한 의료행위를 조장할 수 있다”며 반발했다.

강원여성유권자연대와 충북여성연대 등은 지사 후보들에게 여성 정무부지사를 도입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후보 측에선 “여성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정무부지사를 무조건 여성으로 할당하는 것은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라며 난색을 보였다. 이 밖에도 경기도 광명시와 군포시 뉴타운사업지구 주민들은 보상 지연 등으로 사업 추진이 난항을 겪자 시장 또는 도·시의원에 출마하는 예비후보자들에게 집요하게 간담회를 요구,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인천시장 선거에 나선 한 후보캠프의 관계자는 “수많은 단체가 자기 단체와 연관된 예산의 확대를 공약에 포함하라고 주문하고 있고, 하루에도 10여 건 이상 각종 단체들의 면담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제주=양성철 기자·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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