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차카게 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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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착하게 살자'를 소리나는 대로 쓰면 '차카게 살자'가 된다.

비록 맞춤법은 틀렸지만 얼마나 좋은 말인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착하게 살겠다는 다짐을 하니. 그런데 문제는 가끔씩 우리가 이런 다짐을 전혀 엉뚱한 상황에서 마주치곤 해 불안에 떨게 된다는 사실이다.

*** 어깨 문신은 무언의 협박

예를 들면 휴식을 취하고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 찾아간 한가한 사우나탕의 증기 속 우람한 어깨 근육에서 '차카게 살자'는 문구를 읽는 순간 우리는 온몸이 굳어지며 정말 '착하게' 목욕을 할 수밖에 없다.

얼핏 보기에도 조직폭력의 일원이 틀림없는 몸매를 목욕탕에서 만나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깍두기 모양의 짧고 네모난 머리 스타일, 등이나 팔뚝에 새겨진 푸른색을 기조로 한 문신, 떡 벌어진 어깨와 짧고 굵은 목, 그리고 그 목에 걸려 있는 황금색 체인 목걸이.

이런 모습을 발가벗은 상태로 목욕탕에서 만나게 되면 무슨 특별한 잘못이 없더라도 우리는 대충 알아서 조심할 수밖에 없다.

어깨에 새겨진 '차카게 살자'는 문구는 우리로 하여금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결정타의 역할을 한다.

이 상황이 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가. 스스로 착하게 살겠다는 다짐을 철석같이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을 뿐인데. 그 까닭은 자명하다. 비록 착하게 살겠다고 밝히고는 있지만 우리는 그 사람이 전혀 착하게 살고 있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차카게 살자'는 다짐의 이면에는 내 신경을 거스르면 언제든지 난 착하지 않게 살 준비가 돼 있다는 무언의 협박이 숨이 막힐 정도로 분명하게 전달된다.

대통령제와 정당정치를 수용하고 있는 나라에서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직을 맡는 것은 나무나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래야 여당과 정부가 수레의 두 바퀴를 이루며 균형을 잡아 굴러갈 수 있다.두 바퀴 가운데 하나를 버리면 수레는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넘어진다. 아무리 집권 여당 내부의 사정이 총재의 지도력에 문제를 제기한다 하더라도 총재는 이를 수렴하는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 자신이 책임지고 문제를 수습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가 있다고 덜렁 총재직을 사퇴하는 일은 한마디로 집권 여당의 역할을 정치적으로 포기하는 몰상식한 결정이다.

그렇다면 국민은 대통령이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정치는 전혀 돌보지 않고 행정부의 수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무를 다했다고 받아들일 것인가.

골치 아픈 정치는 젖혀놓고 말 잘 듣는 행정부만 통솔하면 국민이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과연 인정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해 하나의 지도력으로 승화시키는 정치의 통합기능을 포기하고 일사불란한 위계를 기본으로 상의하달만 집행하는 행정을 국민이 기꺼워 할 까닭이 없음은 불을 보듯 분명한 일이다.

대통령은 집권 여당의 정치적 역할의 중요성을 정말 모르고 있을까. 정치 9단의 계산에 이 항목이 빠질 까닭이 없다. 누구보다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집권 초에는 DJP 연합이란 어색하기만 한 공동정권이라도 출범시켜야 했던 대통령이다.

그런데 그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총재직을 스스로 벗어 던져 버렸다. 수평적 정권교체는 물론이고 수직적 정권교체를 하더라도 전직 대통령이 험한 꼴을 당하는 경우를 두 번이나 겪은 상황이다. 무언가 복선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 정치에서 손 떼는 대통령

더구나 스스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고 싶다는 의욕이 누구보다 강한 대통령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정치에서 손을 떼고 행정에만 전념하겠다는 이유를 말 그대로 받아들일 국민이 과연 몇이나 될까. 대통령의 결단을 지켜보며 국민이 마치 '차카게 살자'는 문구를 갑자기 만난 것과 같은 오싹함을 느끼는 까닭이다.

전후좌우의 조건과 분위기가 도저히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과 다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더구나 현재의 대통령은 일생 동안 창당한 정당의 숫자가 두 자리 수에 가까운 9단 정치인 아닌가.

柳錫春(연세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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