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조 · 유통업체 '특소세 태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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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부의 특별소비세 인하 방침이 알려진 14일 서울 삼성동의 삼성전자 선릉역 가전대리점.

하루에 여러 통씩 걸려오던 프로젝션 TV 구입 상담전화가 뚝 끊겼다.오히려 얼마 전 제품을 산 고객이 전화를 걸어 "앞으로 내릴 특소세만큼 환불해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자동차 영업소들도 손님 발길이 크게 줄어 "다음달까지 일손을 놓아야 할 판"이라고 걱정하는 분위기였다.한 자동차회사 경영진은 "오늘 아침부터 승용차 판매가 전면 중단됐고 예약분마저 취소하겠다고 야단"이라고 말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가 구체적인 방안에 합의하고 세율 인하를 하루빨리 단행해 혼란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 비상 걸린 가전.자동차 업계=에어컨은 비수기이고 다음달부터 내년 신제품을 예약판매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덜하다.하지만 지난달 디지털 시험방송이 시작돼 수요가 늘고 있는 수백만원대의 프로젝션 TV는 타격이 크다고 업계는 걱정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공장에서 이미 출하한 물량은 일단 특소세 인하폭만큼 싸게 팔고 나중에 세금을 환급해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전업계는 실제로 이런 판매 방식을 신중히 검토 중이지만 여야 협의 과정에서 세율이 예상대로 내리지 않을 경우 업계가 손실을 떠안을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가전업계는 이번 조치로 에어컨 가격이 14%,프로젝션 TV 가격이 16% 내려 내년 시장규모가 20% 정도 커질 것으로 기대했다.

차 한대 값이 1억원을 넘는 수입차 판매점들은 "언제 차값을 내리느냐"는 고객들의 문의전화에 시달렸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특소세가 내리면 에쿠스의 경우 3백60만원 정도 값이 떨어지는데 누가 지금 차를 사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계약금이 보통 10만원이어서 해약하기도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1998년 특소세 인하 때 법이 통과되기 전에 앞당겨 시행한 뒤 인하분을 환급한 전례가 있다"면서 정부 대책을 기대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의 김소림 부장은 "특소세가 내리면 대형차와 레저용 차 등 비싼 차를 중심으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가전.자동차 업계는 올해 내수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선에서 무리한 할인판매 등 출혈경쟁을 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 고가품 업계는 큰 영향 없을 듯=보석.고급시계.모피 등 사치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들은 특소세 인하 조치에도 불구하고 별 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봤다.

시계.모피.융단은 물건값이 2백만원을 넘는 부분에 한해 특소세를 내릴 전망으로 한도액이 너무 높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모피의 경우 올 겨울용이 대부분 특소세를 물고 이미 출고됐기 때문에 특소세 환급문제가 확정되지 않는 한 가격을 내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고가의 보석.시계도 마찬가지다. 한 명품 브랜드 판매업자는 "많은 업체가 실제 판매가격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탈세해 왔기 때문에 특소세율 인하로 가격을 낮출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가구업계도 이번 세율 인하 조치가 일부 호화 수입가구에만 해당할 것으로 분석했다. 국산 가구 가운데 특소세 인하 한도를 초과하는 제품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백화점 업계는 특소세 인하 시기가 확정되는 대로 특별전.기획전을 열어 매출을 끌어올린다는 전략을 세우고 바쁘게 움직였다.

신세계백화점은 이번주부터 바이어들이 해당 업체와 가격 인하폭을 협의할 예정이다.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도 에어컨.온풍기.스키용품 등이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기획전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특소세 인하 때까지 매출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대책이 마땅치 않아 고심하고 있다.

홍승일.이영렬.김준현.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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