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정치Q] '차기'여론조사 1위 고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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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전 총리는 한국 정치의 수수께끼다. 다른 차기 대선 주자들은 총리나 당 대표.장관.시장.지사.의원을 맡아 정치의 전면에 있지만 그는 야인이 된 지 반년이 넘는다. 젊음이 강조되는 시대에 대부분의 주자가 50대지만 그는 벌써 66세다. 그런데도 그는 최근 몇달 동안 차기 대통령감 여론조사에서 1위를 석권하고 있다. 한국 정치의 강태공(姜太公), 그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오전 5시에 눈을 뜨면 그는 미국 케이블방송 CNN을 켠다. 영어 뉴스를 들으며 20분 정도 요가로 몸을 푼다. 5시30분 조간신문을 집어들고 서울 동숭동 집을 나선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20분 정도 걸으면 성균관대 앞 동네 목욕탕에 도착한다.

새벽목욕은 정치인 고건의 운명을 갈라놓은 일이었다. 민선 서울시장 시절 그는 혜화동 목욕탕에서 노무현 종로구 국회의원을 만나곤 했다. 두 사람은 서로 볼 것을 다 본 관계가 됐고, 노 대통령은 첫 총리로 목욕탕 친구를 골랐다. 대중목욕탕이 아니었더라면 고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못해봤을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오면 그는 아침을 들며 영국의 BBC방송을 시청한다. 측근은 "총리 때는 회의나 보고를 통해 주요 이슈를 알 수 있었지만 이제는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집에서 나오면 걸음은 대학로 카페로 향한다. 수십년이 된 지인들과 커피잔을 놓고 세상사를 나눈다. 이세중 변호사와 정경균 전 서울대 보건대학원장이 그가 자주 보는 얼굴이다. 연지동 여전도회관에 있는 개인사무실. 여러 통의 답전을 끝내면 책을 읽고 인터넷을 검색한다. 다음과 네이버에 '고사모' 팬클럽이 많지만 고 전 총리는 회원이 아니어서 자세히 들여다 볼 수는 없다.

점심식사는 사무실 근처 추어탕.설렁탕집을 애용한다. 광화문 근처로는 좀처럼 나가지 않는다. 자신의 동선(動線)이 언론이나 정부 소식통의 레이더에 잡혀 거론되는 일을 피하려는 것이라고 측근은 설명했다. 고 전 총리의 '무음(無音)행보'는 저녁에도 계속된다. 술이 웬만큼 올라도 시국 얘기는 되도록 피한다.

지난 5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그는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여러 자료를 준비했다. 그러나 9월부터 '차기 주자 1위'라는 여론조사가 이어지자 계획을 포기했다. 측근은 "대선 도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얘기를 피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목욕탕에서부터 잠자리까지 그가 차기를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흔적은 별로 없다. 그는 웃음 뒤편에서 차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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