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기권은 나쁜 정치를 방조하는 죄악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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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지방자치단체장은 당해 지방자치단체를 대표하고 사무를 총괄하는 막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다. 자치단체의 예산편성과 집행권을 지니고 있고, 각종 사업 인·허가권과 인사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다. 중앙정부에서 대통령이 행사하는 권한을 지방자치단체로 옮겨 행사하는 것이나 같은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으며, 광역자치단체장들은 전국적인 지명도도 향유할 수 있는 자리다. 전·현직 의원들이 앞다투어 시·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방의회에 부여된 핵심적 권한은 의결권으로 조례의 제·개정, 폐지, 예산의 심의 및 의결, 그리고 주요 정책 및 방침을 결정하는 권한을 갖는다. 자치단체장의 권한만큼은 아니지만 법적으로 보면 자치단체장을 견제하기에 충분한 권한을 지니고 있으며 지역 차원의 일상 생활에 대해서는 중앙 정부보다 더 큰 연관이 있는 것이다. 교육감과 교육의원은 교육 분야에서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역할을 나누어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지방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6·2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50%를 밑돌 수 있을 것으로 보고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우려는 1995년 지방선거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지방선거 투표율과 60.3%로 역대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던 2007년 대통령 선거, 50%도 넘기지 못하고 46%로 역대 최저를 기록한 2008년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을 고려하면 충분한 근거가 있다. 더욱이 대선이나 총선보다 언제나 낮은 투표율을 기록하는 지방선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40% 내외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투표에 참여하는 계층과 참여하지 않는 계층 간에 이념적 차이가 거의 없고 정책적 선호도의 차별성도 미미하다면 낮은 투표 참여율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동질성이 큰 사회에서는 낮은 투표 참여율이 대의제를 왜곡시키는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동질적 농경사회도 아니고 수출 입국에 매진하던 개발도상국도 아니며 전 국민이 민주화를 갈망하던 민주적 이행기의 사회도 아니다. 세대·지역·계층에 따른 다기 다양한 정책적 선호가 분출하는 민주사회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방선거에 대한 낮은 투표율은 갖가지 문제를 야기해 왔다. 낮은 투표율은 해당 지역의 패권적 정당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를 독식하게 만들어 단체장의 전횡과 지방의회의 방조를 가능하게 했다. 특히 낮은 투표율은 자치단체장들에게는 주민 차원의 감시와 견제가 소홀하다는 메시지로 전달돼 갖은 비리를 저지르도록 방조한 결과를 낳았다.

일반적으로 낮은 투표율은 정치적 무관심과 정치적 소외감에 기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중앙 정치권의 행태보다 결코 나을 것 없는 지방자치단체 구성원들의 행태는 정치적 무관심과 나아가 불신을 초래하고 지속적으로 투표 참여율을 낮추어 온 주범이다. 지방 자치의 실태가 민주주의 지역적 토대를 강화하려는 지방자치제의 도입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지역의 공직자를 선출하는 권리를 방기하는 것은 지방자치제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는 못마땅한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부여된 권리다.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불신을 표현하는 소극적 저항일수도 있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나쁜 정치를 방조하는 죄악이 될 수도 있다.

정하용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