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북에 끌려다닌 장관급 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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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테러사태와 관련한 남측의 비상경계를 이달 내로 안 풀면 이산가족 상봉 등을 논의할 수 없습니다."

금강산에서 열린 6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한때 얼어붙게 했던 김영성 북측 단장의 10일 발언은 하루가 지나자 다소 기세가 꺾였다.

비상경계조치 해제 없이는 이산가족 상봉 등 의제를 논의할 수 없다던 그의 말 한마디에 회담 대표단은 한동안 당혹해야 했고, 상봉 날짜를 고대하던 이산가족들은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러나 늦게나마 양측이 이산가족 상봉 시기.장소와 경협 추진 방안, 차기 회담 날짜 등을 논의해 공동보도문안 작성에 다가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번 회담은 대북정책 추진과정에서 어떤 원칙과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의 숙제를 남겼다.

회담 장소를 둘러싼 논란 끝에 북측 주장에 끌려 금강산으로 향했지만, 북측의 '억지주장'에 밀려 5일간의 회담 일정 중 나흘 가까이를 허송세월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정부는 회담 내내 북한 감싸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9일 金단장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해외순방 중 북한 개혁.개방 관련 발언을 문제삼아 '청탁놀음'이라고 비난한 사실을 브리핑에서 빠뜨렸던 남측 대표단은 평양방송 보도가 나온 뒤에야 "새로운 내용이 아니지 않으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북측이 비상경계조치 해제를 요구하며 시한을 '11월 중'으로 못박은 대목도 애써 외면하려 했다.

남측 대표단은 남북 회담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할 또 한장의 공동보도문을 가지고 12일 귀환하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내용 없이 지난 5차 회담 때 합의했던 내용을 다시 정리한 수준이 될 게 확실시된다.

결국 염불(회담)엔 관심 없이 금강산 관광 대가 미지급금(2천4백만달러)이나 쌀.전력 지원 같은 잿밥에만 쏠려 있는 북측의 근본적 태도 변화 없이는 금과옥조 같은 합의문안도 공수표가 돼버릴 수 있다.

그래서 이번 회담 과정을 보면서 "이번 금강산 회담을 수용하면 '회담을 위한 회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던 통일부 당국자의 언급이 안타깝게 와닿는다.

이영종 통일외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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