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마루에 초승달
희미한 호롱불처럼 걸려 있어
깜깜하던 하늘 전체가
아늑한 오두막 되면
등잔에 기름 떨어져 불도 못 켜고
가슴만 졸이던 개똥벌레 한 마리
비로소 마음 속에
반딧불 밝히고 길을 찾는다
- 김영무(1944~)'반딧불'
"바야흐로 범죄자의 친구인 매혹의/저녁은 공모자처럼 늑대걸음으로 오고/하늘은 거대한 침실처럼 천천히 닫히니/성급한 사람은 야수로 변하누나"라고 '현대'의 '저녁'을 노래한 시인은 19세기의 보들레르였다. 우리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시인이 하늘지붕으로 오히려 상징주의의 '침실'보다 더 거대한 우주의 집을 짓는다.
초승달과 호롱불, 등잔과 개똥벌레가 일상의 일부였던 우리의 어린 시절이 중세시대, 그러니까 어제였던가. 아주 옛날 옛적에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가 있었더니라….
김화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