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최효민 국악방송 P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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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난 책을 맘대로 읽고 싶어 철학을 전공했다. 책 읽는 것이 미덕일 수 밖에 없는 전공에, 음악도 광적으로 좋아했기 때문에 음악을 철학적으로 풀거나 하는 등의 직업을 개척해가며 재미있게 살 수 있으리라는 확신으로 일관하며….

결국 지금은 심야 프로그램 PD에 DJ 하며 책과 음악 속에 묻혀 살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다행스럽다.

햇살 가득한 도서관에서 책을 쌓아두고 지적인 활동에 모자라게 마련인 열량을 엄청난 초콜릿으로 보충하면서 씩씩하게 살았던 대학시절,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 (열화당)는 가방 속에 상주하던 책이었음을 고백한다.

사진에 대한 간결한 단상은 세상을 보는 눈에 별반 확신이 없었던 내게 가치관 형성과 수정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했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은 중세철학수업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낸 숙제였다.

그 책 때문에 잘 고양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선배가 선물한 호프 스태트의 『괴델,에셔,바흐』(까치). 세상에 대한 우의와 상징으로 가득한 책은 어려웠지만 음악에 최초로 세상사를 투영하고픈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최명희 (『혼불』.한길사)의 아름다운 문체, 『청장관전서』(솔)에서 만나는 조선조 사대부 이덕무의 섬세한 시문(詩文)은 사물에 대해 가지고 싶은 아름다운 긴장감에 대해 생각케 한다.

연암의 평전 '과정록'을 국역한 『나의 아버지 박지원』(돌베개)이 머리맡에 있다. 친구 홍대용과 교우하면서 연암이 가진 개척정신이 문화계의 프런티어이기를 원하는 내게 늘 용기를 준다. 자, 이제는 그저 아름다운 책인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보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산업사회의 복판을 독립적이고 위엄있게 살아온 삶은 지금도 닮고 싶다.

세상이 아직도 살 만한 가치가 있냐고? On-Air….

밤 10시 시보와 함께 스튜디오에 혼자 남게 되면 프로그램 시그널 음악의 제목이기도 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문예출판사)를 떠올린다. 남들이 말하기를 어린왕자의 친구인 여우의 캐릭터를 닮은 내게, 당연히 그 질문에 대답은 하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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