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 칼럼] 메멘토 모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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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간디는 예수가 말한 사랑은 한 마디로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유정(有情)한 생명을 죽이기까지 하면서 배를 채워서야 사랑의 세계에 이를 수 없다는 말이다.

아프리카의 어떤 식인종 사람은 딴청을 놓았다. 유럽의 문명인들은 사람을 죽여 놓고도 먹지 않으면서 왜 전쟁을 하고 살인을 하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은 간디의 위대한 육식폐지운동을 한 방에 웃음거리로 만들 만큼 철저하다. 육식은 안해도 살인은 한다면 그것이 어찌 사랑이겠는가.

식인종 쪽의 이 질문에 대한 답안을 한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이 작성했다. 문명인은 권력을 위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다. 개인이나 집단이 저지르는 살인 행위도, 그에 대한 복수로서 국가가 가로챈 사형도 권력 의지의 실현이다.미셸 푸코는 감옥이란 것은 교화가 아니라 권력을 위해 있다고 말했다.

*** 권력 위해 저지르는 살인

사형제도는 국내적 권력에 봉사하기 위해 있다. 전쟁은 국제적 권력 쟁탈 과정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그 권력의 최고 표현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 미 국방부와 세계무역센터를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 거창한 방법으로 공격해 한 순간에 6천명이나 살해한 것도, 여기에 맞서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걸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다 권력을 위한 살인이다.

사형이 정의를 세우고 사회 질서를 바로잡아 준다고 사형제도 옹호자들이 그 순기능을 말하면 사형 폐지론자는 사형이 국가에 의한 살인이고 사형 때문에 범죄가 감소했다는 실증은 없다고 반박한다. 이 수준에서의 토론은 아무리 계속해도 티격태격으로 끝날 뿐이다. 권력의지에서 살인이 빠지기 전에는 사형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동물에게도 권력은 있다.인도네시아의 발리 섬 관광 코스에는 원숭이 숲이 으레 포함된다. 그 숲에는 암놈을 서로 차지하려는 숫놈들의 전쟁이 해마다 벌어진다.

그 중에서 경쟁자를 모두 물리친 한 마리가 원하는 모든 암놈을 차지한다. 이렇게 암놈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에서 이긴 놈이 왕이 된다. 금방 왕을 알아 볼 수 있는 징표는 권력 호르몬 탓인지 그의 털은 밝은 황금색으로 번들번들 빛난다는 점이다.

식인종이 먹기 위해 사람을 살해하듯이 원숭이는 번식을 위해 다른 원숭이와 싸우다 보니 그 결과 이기면 왕이 된다. 다시 말해 먹을 것이나 번식을 위해 싸우다가 이기면 망외(望外)로 권력을 잡게 된다. 그 권력은 먹고 섹스하는 권력이다. 그러나 문명인은 권력 자체를 위해 투쟁한다는 것이 원숭이나 식인종과 다른 점이다.

권력은 그 목적이 순수하게 권력 자체라야 한다고까지 진화됐다. 권력가가 재물을 탐하면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처럼 부패했다고 지탄받고, 섹스를 즐기면 미국의 빌 클린턴 전임 대통령처럼 타락을 이유로 탄핵문전까지 몰린다.살인을 위해 살인하고,전쟁을 위해 전쟁하고, 사형을 위해 사형하는 것이 권력의 순수성이다.

사형 자체가 본래 목적이므로 사형을 당하는 사람이 진범이 틀림없냐 하는 문제마저 부차적 차원으로 밀려 나고 만다. 사형제도가 철폐된 유럽이지만 만일 미국에서처럼 그곳에 탄저병 포자를 뿌리거나 건물을 폭파하는 테러범이 속출하는 일이 생기면 사형제도는 틀림없이 부활할 것이라고 나는 본다.

*** 사형제도가 철폐된 유럽

지금 국내에서 벌이고 있는 사형폐지 입법 운동은 실패할 것이다. 호전적인 북한 체제가 국내인지 국외인지도 정의할 수 없는 영토에 존재하고, 이웃에는 우리나라의 범죄자를 석연치 않게 처형하는 중국 같은 나라도 있고, 사회는 아직 언제라도 대규모 혼란에 빠질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는 위에다, 전통적으로 홉스(Hobbes)적 공리주의 공동체주의 정부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입법.사법.행정 권력자들이 그들 권력의 근본인 사형을 폐지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나 죽음을 기억하자(memento mori). 그리고 개인이나 집단이나 국가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을 계속 밀고 나가자.인간의 권력이 변해 사랑으로 진화되는 긴 시간 위에서 말이다.

강위석 <'emerge새천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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