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전망대] "나라이름 합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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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깜짝 놀랄만한 제안 하나를 내놓았다. 지난달 23일 베이징(北京) 중난하이(中南海)에서 대만의 '중국통일연맹'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였다.

江주석은 왕진핑(王津平) 연맹 주석과 악수를 나누자마자 대뜸 "국호문제로 대만동포들의 불만이 많다죠□"라고 운을 뗀 뒤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니 중화민국(대만)이니 서로 복잡하게 부를 것 없이 둘 다 '중국'이라고 호칭을 통일합시다"라고 제안했다.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대만에 절대 허용하지 않았던 '중국' 국호를 사이좋게 나눠 쓰자고 제의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1일 타이베이(臺北)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뒤늦게 이 소식을 언론에 전한 王주석은 "江주석의 통 큰 제의에 대표단 모두가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江주석의 제안은 그 뿐만 아니었다. 우선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에 대만 지도자들이 동의하기만 한다면 대만 총통과 자신이 수시로 상대방 지역을 방문할 수 있다는 말도 했다.

"미국이 없었다면 양안은 벌써 오래 전에 통일됐을 것"이라는 말로 미국에 대한 불만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江주석은 "내가 빌 클린턴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꺼낸 화제가 바로 양안 관계였다"고 소개하고 "양안 관계는 사실상 중.미 관계라고 클린턴에게 항의했다"고 전했다.

대만 지도층에 대한 인상을 江주석은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않겠다는 뒤틀린 자존심으로 가득찬 인물들로 요약했다.

江주석은 또 "대만은 식민지였던 홍콩.마카오와는 다르다"며 대만문제에 대해서는 홍콩과 마카오에 적용했던 원칙들을 그대로 원용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천수이볜(陳水扁)대만 총통은 그러나 이 소식이 전해진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양안간 국호 통일문제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江주석의 '통 큰' 제안은 사소한 문제는 시원하게 양보하면서 실리를 챙기겠다는 뜻이 아닐까.자신감을 회복한 중국의 두 얼굴을 보는 느낌이다.

홍콩=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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