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편법구매 경쟁 ‘디지털 네이티브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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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회사원 임모(27)씨는 최근 해외 구매대행 사이트를 통해 아이패드(사진)를 주문했다. 아이패드는 애플사에서 나온 태블릿PC로 지난달 3일 미국에서 처음 출시됐다. 아직 국내 정식 수입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임씨는 국내에 정식 수입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때마침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지난달 27일 개인당 1대 구매를 허용하면서 해외 구매대행 사이트들이 속속 생겨났다. 미국에 있는 판매자가 인터넷을 통해 구매 희망자를 모은 후, 미국 현지에서 대량 구입해 국내로 보내주는 방식이다. 국내에서 판매목적으로 수입하는 것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우회로를 택한 것이다. 임씨는 “편법이란 사실은 알지만, 이미 미국 친구들이 아이패드를 사용한 뒤 블로그에 사용후기를 올리는 것을 보고 서둘러 주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디지털 혁명기의 한복판에서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족(族)’에겐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디지털 네이티브란 디지털 언어와 장비를 마치 특정 언어의 원어민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젊은 세대를 뜻한다. 그만큼 디지털 기기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또 신제품 등장에 민감하기 때문에 출시를 앞두고 여러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 유명 인터넷 게임업체의 경우 신제품 출시를 석 달이나 남겨둔 상황에서 가격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달 ‘스타크래프트2’의 예상 가격이 공개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 ‘너무 비싸다’ ‘게임성만 좋다면 납득할 수 있는 가격이다’ 등의 설전이 오고 갔다. 제품 출시 후에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품평회’도 전문가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제품의 성능과 활용 범위, 가격 등을 꼼꼼히 비교 분석하는 글들을 경쟁적으로 올린다.

연세대학교 황상민(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외국의 신제품 구매를 신분상승의 상징으로 받아들였지만 디지털 네이티브족의 경우 디지털 세계의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면 스스로 시대에 뒤처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패드처럼 편법 구매가 이뤄지는 것은 오히려 사회적 시스템이 소비욕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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