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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빡센’ 훈련으로 도전정신과 희망을 심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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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호 16면

오지에서 축구로 사랑을 실천하는 축구 감독들. 왼쪽부터 임흥세·김신환·강성민씨.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야자수공과 헝겊을 대 기운 낡은 공이다. 신인섭 기자

임흥세(54) 선교사=서울 광희중 감독 시절 홍명보(런던올림픽 대표팀 감독)와 김주성(대한축구협회 국제국장) 등 한국 축구의 스타를 키운 지도자 출신이다. 3년 전 남아공으로 건너가 흑인 빈민촌 아이들을 상대로 축구를 가르치고 팀을 만들었다. 그의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희망의 별’이 만들어져 남아공 월드컵 개막일인 6월 12일 국내에서 시사회를 갖는다.

임흥세·김신환·강성민 ‘지구촌 축구 전도사’ 3인

김신환(53) 감독=‘동티모르의 히딩크’로 널리 알려진 축구 지도자. 2002년 동티모르 유소년을 지도하기 시작해 지난해 청소년대표팀을 아시아축구연맹(AFC) 16세 이하 청소년대회 16강에 올려놨다. 그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만든 극영화 ‘맨발의 꿈’(감독 김태균)이 지난 4일 제작발표회를 했고, 6월 10일 전국에서 개봉된다.

강성민(47) 선교사=15년째 태국과 라오스·캄보디아 등지에서 청소년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며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한때 세계챔피언까지 올랐던 축구 묘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그가 만든 100번째 축구팀인 태국 모겐족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소명2-모겐족의 월드컵’(감독 신현원)이 지난 4월 1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임흥세 감독이 에이즈로 양친을 잃은 남아공 소년 선수를 격려하고 있다.

이 세 사람이 지난 4일 중앙일보사에서 만났다. 서로 잘 알고 있지만 함께 자리를 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강 선교사와 임 선교사는 수원컵 국제 유소년축구대회(4월 22∼26일)에 팀을 데리고 왔다가 며칠 더 체류하고 있었고, 김 감독은 영화 제작발표회 참석차 4일 새벽에 입국했다.

이들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서로 안부와 궁금한 점을 묻고 대답하느라 인터뷰장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비록 사는 나라와 처지는 다르지만 척박한 남의 땅에서 축구를 통해 꿈과 희망을 전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강한 동지의식으로 묶여 있었다.

임 선교사는 “홍명보 감독이 제가 사역하는 곳에 천연잔디 축구장을 지어주기로 했습니다”라며 싱글벙글이다. 자랑스러운 제자로부터 뜻하지 않은 도움을 받은 게 그렇게 좋은 모양이다. 홍 감독과 하나은행이 지원한 1억4000만원으로 남아공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 외곽의 이퀴지레템바에 천연잔디를 까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6월 9일 완공 기념 행사에 홍 감독도 참석하기로 했다.

임 선교사가 요즘 가장 관심을 쏟는 분야는 ‘에이즈 어린이 축구팀’ 창단이다. 부모가 에이즈에 걸렸거나 본인이 에이즈 보균자인 아이들을 모아 축구팀을 만드는 것이다. 임 선교사는 “천형(天刑)으로 생각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에이즈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지구촌 사람들에게 아프리카의 에이즈 문제를 환기시켜 주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강 선교사는 축구센터 건립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방콕에서 200km 정도 떨어진 곳에 16만5000여㎡의 부지를 구입해 최근 전기공사를 끝냈다. 강 선교사는 “지금까지 제가 가르친 아이들이 3500명 정도 되는데 이들이 사는 부족을 일일이 찾아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축구센터를 만들어 이들에게 좀 더 수준 높은 축구 기술을 가르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임마누엘 축구단’이라는 이름으로 태국·라오스·캄보디아 등지에 팀을 만들어 나갔는데 태국 모겐족이 100번째 팀이었다. 강 선교사는 야자수 열매를 공 삼아 맨발로 축구를 하던 아이들을 모아 100일 동안 강훈련을 시켰고, 도회지에서 열리는 축구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수준을 끌어올렸다. 이 내용을 담은 영화 ‘소명2-모겐족의 월드컵’은 2만5000여 명이 관람했다. 다큐 영화치고는 꽤 괜찮은 흥행이다. 강 선교사는 최근 2022년 월드컵 유치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한승주 위원장에게 모겐족의 야자수 축구공을 선물했다. 영화를 본 뒤 모겐족 아이들에게 축구화와 유니폼을 선물하겠다는 사람도 많아졌다.

김 감독은 올해 10월 열리는 AFC 16세 이하 청소년대회 4강이 목표다. 4강 안에 들면 내년 개최되는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 월드컵 출전권을 얻게 된다. FIFA 207개 회원국 중 랭킹 200위인 동티모르로서는 천지가 개벽할 사건이다. 김 감독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동티모르는 포르투갈 혼혈이 많아 축구 기본기와 유연성이 좋은 재목이 많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대부분 게으르고 의타적이라는 점이죠. 한국에서 하던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이들의 정신력과 기량을 끌어올렸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한국으로부터 받는 도움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AFC 청소년대회를 앞두고도 경기도 안산의 한국가스공사 연수원에서 6주 정도 훈련을 계획하고 있다. 숙식과 훈련에 드는 비용은 전액 가스공사에서 부담한다. 동티모르의 천연자원을 공동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앞둔 가스공사 측에서 ‘자원외교’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세 사람을 보면서 궁금한 게 있었다. 첫째는 ‘과연 축구가 척박한 환경의 아이들에게 구원의 동아줄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다음으로는 전 세계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데 왜 하필 한국인들이 이렇게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놓을까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의문에 대해 임 선교사가 응답했다.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축구는 빈곤의 수렁에서 탈출할 수 있는 지렛대입니다.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1, 2부 포함)에 아프리카 출신 300명이 뛰고 있어요. 남아공 월드컵이 끝나면 그 숫자는 두 배가 될 겁니다. 아이들은 ‘축구만 잘하면 내 가족과 부족을 살릴 수 있고, 나도 부자로 살 수 있다’는 꿈을 갖고 있어요. 이들을 술과 마약, 에이즈의 위험에서 구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축구라고 생각합니다.”

강 선교사가 거들었다. “태국은 한국보다 축구는 못하지만 한국보다 축구를 훨씬 더 좋아합니다. 아줌마들도 간밤의 맨유 경기를 놓고 토론을 벌일 정도니까요. 여기서도 축구만 잘하면 좋은 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갈 수 있고, 외국으로 진출할 기회도 많습니다.” 요컨대 지구촌 어디서나 축구는 가장 손쉽게, 혹은 유일하게 ‘인생 역전’을 꿈꿀 수 있는 통로라는 것이다.

‘왜 한국인인가’에 대해서는 김 감독이 명쾌한 답을 내놨다. “한국 사람들은 한마디로 ‘빡셉니다’.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요. 그리고 가슴이 따뜻합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하든지 도와주려고 하지요. 강한 도전정신과 따뜻한 가슴이 합쳐져서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들을 성취해 내는 거라고 봅니다.”

임 선교사가 여기에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를 보탰다. “열대지방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게으릅니다. 이들을 끌고 목표를 향해 가려면 ‘빨리빨리’ 기질을 발휘해 몰아붙여야 합니다. 다만 그 속에 이들을 향한 사랑이 녹아 있어야 하고, 그게 행함으로 나타나야 하죠.” 임 선교사는 2008년에 이어 이번에도 흑인 빈민가 아이들 30명을 데리고 한국을 찾았다. 이들에게는 나고 자란 마을을 떠나는 것, 비행기를 타는 것, 새하얀 시트가 깔린 숙소에서 잠을 자는 것 모두가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강 선교사는 마지막으로 ‘한국인의 끈기’를 제시했다. “무기력에 젖어 있는 아이들을 끌어올리려면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현지 부모들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가 끈기 있게 자녀들을 설득하고 사랑으로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저를 인정하더군요.”

한국인의 강인한 정신과 따뜻한 마음, 여기에 우리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끈기가 합쳐져 이들은 ‘동티모르의 히딩크’ ‘남아공의 축구 슈바이처’ ‘모겐족의 희망 전도사’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헤어지기 전 세 사람이 공 하나씩을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현지에서 가져온 야자수 축구공, 헝겊을 기워 만든 축구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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