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때늦은 '커닝' 후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 백일현 사회부 기자

'대입 수능시험 휴대전화 커닝 사건'이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관련 기사가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하고 고개 숙인 학생들의 모습이 클로즈업되고 있다. 교육부를 비롯해 관련 기관이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책을 내놓기 위해 허둥대고 있다.

그러나 사건 초기에 만난 학생들은 '그럴 수 있는 일인데 왜 부산을 떠느냐'는 반응을 보여 기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지난 21일 경찰에 출두한 한 고교생은 "어설프게 커닝을 하려다 재수없게 걸렸다"고 말했다. 전문 브로커가 개입했다면 꼬리가 잡히지 않고 감쪽같이 일을 처리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선배들도 커닝을 했고, 수법도 인터넷으로 떠돌았던 만큼 다른 지역에서도 똑같은 일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잘못을 시인하기는커녕 이번 사건에 적발된 것을 '불운' 탓으로 돌리며 태연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하루 만에 달라졌다. 22일 오후 여섯명의 학생이 구속됐다. 수십명의 학생이 무더기로 소환됐다. 감방에 갈 학생이 몇명이 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으로 변한 것이다. 그제서야 사안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는 듯했다.

경찰서를 찾은 한 교사는 조사를 받고 있는 철없는 제자에게 "야! 이놈아, 내가 그렇게 가르쳤느냐"고 꾸짖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휴대전화를 어떻게 구입했는지, 실제로 답을 받아 적었는지 등을 캐물으면서도 제자가 부인하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제자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죄송합니다. 이제서야 제가 잘못한 것을 알았어요"라며 흐느꼈다.

사건에 가담한 아들을 둔 한 학부모는 광주시교육청 홈페이지에 '사죄의 글'을 올려 아들 대신 잘못을 빌었다. 그는 "모든 일을 부모 부덕의 소치로 이해해 주시고 이런저런 공방은 제발 말아주시길 감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별 죄의식 없이 부정행위에 가담한 것 때문에 본인은 물론 부모.교사 모두는 가슴에 큰 상처를 입었다. 뒤늦게 모두 '내 탓' 이라고 자책하고 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백일현 사회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