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10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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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03. 중도법문

팔만대장경으로 상징되는 부처님의 방대한 가르침을 시공을 넘나들며 설법하는 성철 스님의 법문이 결코 쉬울 수만은 없다. 좀 어렵더라도 성철 스님의 가르침 중 가장 핵심적인 사상, 즉 '교(敎)와 선(禪)을 관통하는 사상이 부처님의 중도(中道)사상'이란 대목은 직접 법문을 통해 알아보고 지나가야 할 것 같다. 중도법문에 대한 큰스님의 법문.

"부처님께서 성불한 뒤 곧 수행 중인 다섯 비구를 찾아가서 무슨 말씀을 맨 처음 하셨는가 하면,'내가 중도를 바로 깨쳤다'고 말씀했습니다. 중도가 불교의 근본입니다. 중도는 모순이 융합되는 것입니다. 선(善)과 악(惡)이 서로 대립되어 있는데 불교의 중도법에 의하면 선.악을 떠납니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그 중간이란 말이 아닙니다. 선과 악이 서로 통해 버리는 것입니다. 선이 즉 악이고 악이 즉 선으로 모든 것이 서로 통합니다.서로 통한다는 것은 유형이 즉 무형이고 무형이 즉 유형이라는 식으로 통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중도법문이라는 것은 일체만물, 일체만법이 서로서로 융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철 스님 법문의 장점은 이같은 가르침에 대한 적절한 비유다.

"중도는 중간이 아닙니다. 중도라는 것은 모순 대립된 양변인 생(生).멸(滅)을 초월하여 생.멸이 서로 융화하여 생이 즉 멸이고 멸이 즉 생이 되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물과 얼음에 비유하면 아주 알기 쉽습니다.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면 물이 없어졌습니까? 물이 얼어서 얼음으로 나타났을 뿐 물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물이 얼음으로 나타났다 얼음이 물로 나타났다 할 뿐이고, 그 내용을 보면 얼음이 즉 물이고, 물이 즉 얼음입니다."

성철 스님이 자주 인용하는 아인슈타인의 E=mc2이란 등가원리 공식이 인용되는 것도 이 대목이다. E=mc2이란, 에너지(E)가 곧 질량(m)이라는 얘기다.

"에너지.질량 관계도 이와 꼭 같습니다. 에너지가 질량으로 나타나고 질량이 에너지로 나타날 뿐, 질량과 에너지가 따로 없습니다. 물과 얼음이 서로서로 다르게 나타날 때에 물이 없어지고[滅], 얼음이 새로 생긴 것[生]이 아닙니다.

모양만 바뀌어서 물이 얼음으로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불생불멸(不生不滅) 그대로입니다. 마찬가지로 질량이 에너지로 나타나고, 에너지가 질량으로 나타납니다. 에너지가 질량으로 전환될 때 에너지는 멸(滅)하고 질량이 생기지(生) 않습니까?

그러니까 생(生)이 즉 멸(滅)입니다. 질량이 생겼다(生)는 것은 에너지가 없어졌다(滅)는 것이고, 에너지가 없어졌다(滅)는 것은 질량이 생겼다(生)는 것입니다. 그러니 생.멸이 완전히 서로 통해 버린 것입니다."

성철 스님은 이같은 과학적 상식과 비유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일본 과학자들의 저서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불교에 정통한 일본 과학자들은 이같은 비유를 자주 들었고, 성철 스님은 "서양 사람들은 불교를 몰라 과학적 설명만 하지만, 일본 물리학자 중에는 그 이론의 불교적 의미를 아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물론 성철 스님이 보기에 이 모든 것을 먼저 안 사람은 부처님일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가 없었으면 불생불멸이라는 것은 거짓말인가? 그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3천년 전에 진리를 깨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혜안(慧眼)으로 우주 자체를 환히 들여다본 어른입니다.

그래서 일체 만법 전체가 그대로 불생불멸이라는 것을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은 그런 정신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3천년 동안을 이리 연구하고 저리 연구하고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결과, 이 자연계를 구성하고 있는 근본 요소인 에너지와 질량이 둘이 아님을 겨우 알아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불생불멸이라는 원리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버렸다 이것입니다. 그러니 원자물리학이 설사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해서 그런 것이지 부처님이 본시 거짓말할 그런 어른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원리, 부처님 가르침을 깨닫는 것이 곧 성철 스님이 강조했던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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