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선] 막판 힘 받은 보수당 … 정권교체 가능성 커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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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가 6일 부인 서맨서 여사와 함께 옥스퍼드셔주의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한 뒤 떠나고 있다. [위트니 로이터=뉴시스]

“변화를 선택했다.”

6일 오전 런던 도심 웨스트민스터구의 세인트 스티븐 스쿨 투표소에서 나온 로라 비커스(46)는 “누구를 찍었으냐”는 질문에 “영국은 비밀투표를 보장한다”고 농담을 한 뒤 이렇게 자신의 표에 대한 힌트를 줬다. 최소한 노동당에 표를 던지지는 않았다는 뜻이었다. 이 투표소는 북웨스트민스터 지역구 소속으로 현역 의원이 노동당의 카렌 버크다. 버크는 노동당이 1997년 ‘토니 블레어 돌풍’으로 18년 만에 보수당으로부터 정권을 빼앗을 때 처음 당선해 이후 두 차례의 총선에서도 지역구를 지켰다. 노동당과 집권 13년의 영광을 함께 누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정권 교체 위기를 맞은 노동당과 비슷한 운명에 처했다.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의 조앤 캐시 후보에게 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투표소 앞에서 만난 로리 오스본(61)은 “버크 의원에 대한 반감은 없지만 고든 브라운 총리를 다우닝 스트리트(총리 관저가 있는 거리)에서 내보내기 위해 보수당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7시(현지시간) 영국의 5만여 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5년 만의 총선이 실시됐다. 투표 시작 직후 극우 정당인 독립당의 전 당수이자 총선 후보인 나이젤 패러지 유럽의회 의원이 탄 경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지만 선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패러지 의원은 큰 상처는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는 오후 10시까지 계속됐다.

유권자들의 관심은 지역구 선거 결과가 아닌 정권 교체 여부에 모아졌다. 보수당이 어느 정도의 차로 노동당에 승리하느냐가 최대 쟁점이었다. 전날의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는 보수당이 과반에 근접한 의석을 차지해 정권을 빼앗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당이 280∼300석, 노동당이 240∼250석, 제3당인 자유민주당이 70∼80석을 얻는다는 게 대체적인 예측이다. 최소 과반 의석은 326석이지만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주장하는 신페인당 소속 의원은 의회 표결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324석가량이다. 신페인당은 4석 정도를 얻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날 유럽연합(EU)이 영국 정부에 재정적자 문제를 경고한 것도 보수당에 힘을 실어줬다. 노동당의 경제 정책 실패가 부각된 것이다. 보수당은 재정 적자 축소에 가장 적극적인 정당이다.

영국 언론은 보수당이 과반에 20여 석 모자라는 300석 정도만 얻으면 집권에 성공할 것으로 내다봤다.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가 총리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노동당이 자유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정권을 연장하려 해도 유권자들이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린 분석이다.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약 80%의 유권자가 과반을 확보한 정당이 없는 ‘헝(Hung) 의회’가 구성될 경우 최다 의석을 얻은 당이 집권하는 게 옳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헝 의회는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처럼 불안한 모습의 의회라는 뜻이다. 양당주의 전통이 강한 영국에서는 다른 유럽국가들과 달리 과반 의석을 확보해야 집권당으로 인정하는 관례가 유지돼 왔다. 따라서 보수당과 노동당의 의석 차가 크지 않을 경우에는 정부 구성 방법을 둘러싼 논란이 분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날 164개의 시·구 의회 선거도 함께 치러졌다. 여기에는 한국 교민 권석하(59)씨도 출마했다. 한국 교민이 영국의 공직 선거에 도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권씨는 런던 근교인 서리주 킹스턴시 시의원에 입후보했다. 킹스턴시는 전체 주민의 10%에 달하는 약 2만 명의 한국 교민·주재원·유학생이 살고 있는 한인 밀집지역이다. 자유민주당 후보인 권씨는 82년부터 영국에 거주하며 무역업·여행업 등을 해왔다. 권씨의 지역구는 자유민주당의 중진 에드워드 데이비 의원이 3선에 성공한 곳이다. 권씨는 “교민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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