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이 정력도 세다는 선입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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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구미 사회는 제왕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엄격한 금욕주의를 요구했던 빅토리아니즘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이에 따라 동성애와 임신중절은 어느 정도 해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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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종문제와 결부된 다른 인종 간의 섹스에 대해서는 불과 30년 전까지 금단의 문이 열리지 않은 상태였다. 1960~70년대까지 남부 16개 주에서는 백인과 흑인 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률이 여전히 존재했다.

연방 최고재판소가 1883년 다른 인종 간의 성적 접촉을 성범죄로 정한 앨라배마주법이 합헌이라고 한 판결이 20세기 후반까지 그대로 승계된 것이다. 1958년 흑인 여성과 비밀 결혼한 리처드 라빙이라는 백인 남성이 버지니아주 타 인종 간 결혼금지법 위반으로 구속된 사건이 일어났다.

이 백인 남성은 25년 동안 다른 주에서 거주한다는 조건으로 금고 1년에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이 판결에 불복한 라빙이 연방 최고재판소에 상고했고, 거기서 이 법이 연방헌법에 규정된 평등한 보호규정을 위반하고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을 계기로 백인과 흑인의 결혼은 미국 전역에서 합법적 행동으로 인정 받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의식이 당장 변한 것은 아니었다. 존슨 대통령의 공보비서 그레이스 하르셀은 피부가 검게 변하는 약을 복용하고 흑인 여성으로 변장해 백인의 성적 유인에 짐짓 당하는 척하며 실태 파악에 나섰다. 흑인 여성에게 고압적 자세를 취하는 백인 남성을 직접 체험하고 그 취재를 참고해 『검은 피부는 알았다(Soul Sister)』(1969)라는 책을 썼다.

인종과 성을 둘러싼 문제에는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이 남아 있다. 바로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결혼이다. 1970년대 이후에도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커플에 대해 말이 많았고 사적 제재도 적지 않았다. 상징적인 사건이 1990년 일어난 애니타 힐 사건과 O J 심슨 재판이었다.

1991년 연방 최고재판소 판사 사굿이 은퇴하자 조지 부시 대통령은 후임에 흑인 판사 클래런스 토머스를 지명했다. 하지만 오클라호마 대학 교수를 역임한 흑인 여성 애니타 힐은 토머스 판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다. 그 결과 최고재판소 판사로서 토머스의 적격성을 놓고 연방의회가 심하게 동요했다. 실상은 애니타 힐의 자작극이었다.

미국 언론은 성희롱 여부는 따지지 않은 채 흑인의 사회 진출만 문젯거리로 삼았다. 흑인의 출세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은 상류층 흑인이 성추문으로 도태당하는 광경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그 후 미식축구선수 O J 심슨의 아내 살인사건 등을 겪으면서 미국 사회에서는 흑인 남성이 백인 남성보다 섹스가 강하다는 선입견이 다소 완화됐다.

하지만 아직도 매춘시장에서 여성 외도꾼을 노리는 섹스 상대가 대부분 피부가 검은 남자들이라는 사실이 백인 남성들의 열등감에 여전히 뗄 수 없는 혹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곽대희 비뇨기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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