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 Report] 시장 ‘안정’됐지만 ‘정상화’는 아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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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위기에서 벗어난 단계=우선, 불안요인들부터 보자. 주가가 위기 전 수준을 넘어서고 잠잠해질 것 같던 가계대출이 다시 고개를 들고 국가와 기업의 신용(위험)도를 반영하는 가산금리가 위기 전 수준으로 안정됐다. 이것만 보면 금융시장이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글로벌 경제도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다.

또 기업들의 투자도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돈이 돌기는 도는 모양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에 그런 소리를 한번 해보라. 시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바로 핀잔을 받을 것이다. 출구전략 운운할 정도로, 그토록 많이 풀렸다는 돈을 봤다는 중소기업은 찾기 힘들다. 금융경색은 해소됐는지 몰라도 아직 돈은 제대로 돌고 있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나라 안은 집값의 급격한 하락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가계대출의 뇌관을 제거해야 하는 지난(至難)의 금융문제를 안고 있고, 나라 밖은 일부 국가의 부도 위기 때문에 글로벌 증권시장이 연일 춤을 추고 있는 상태다. 지금 국내외 금융시장은 위기에서 벗어나 ‘안정’이 됐을 뿐 아직 ‘정상화’된 것은 아닌 것이다.

◆장기 성장세를 되찾지 못했다=그럼 경기나 성장은 어떤가. 올 1분기가 작년 같은 때에 비해 7.8% 성장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또 작년 1분기부터 1년 넘게 분기마다 성장세를 이어온 점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재작년 말과 작년 초가 너무나 좋지 않다 보니, 작년 말과 올 초가 좋아 보이는 것일 뿐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올 한 해 장사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뿐 아니라 민간 연구기관도 올해 우리 경제가 5%를 약간 상회하는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꽤 괜찮은 장사를 하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2008년은 성장률이 2.3%였고 2009년은 아예 아무런 성장도 못했다(0.2%)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반(反)시장적이다’ ‘좌파정권이다’ ‘그래서 나라경제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등 온갖 비난을 쏟아부었던 지난 정권 아래서도 우리 경제는 한 해 평균 4.3%씩은 컸었다. 올해 5% 정도의 성장으로는 우리 성이 찰 수 없다는 얘기다.

◆물가 오름세는 미약하다=그렇다면 물가는 어떤가. 부문별로 또 날씨나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기미가 엿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망기관들이 상반기에 2%대 중반, 하반기 2%대 후반, 내년이 돼야 낮은 3%대의 물가상승을 점치고 있다.

더구나 우리의 공급능력(잠재성장력)에 비해 저조했던 지난 2년의 장사 때문에, 우리에게는 상당한 공급 여력(아마도, 5~6% 이상의 GDP 갭)이 남아 있다. 그 빈 곳이 채워져서(그 ‘잃어버린 2년’을 되찾아서) 물가상승 압력이 나타나려면, 5%를 뛰어넘는 활황이 한동안 지속돼야 한다는 얘기다. 논자들이 인플레 심리를 부추기지 않는 한, 올해 안으로 물가상승을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금리는 손대지 말아야=아직은 출구전략을 구사할 때라고 보이지 않는다. 많은 단기 부동자금을 걱정하는 논자들이 있으나, 그것은 부문별 대책으로 대처해 나면서 그 유동성을 줄여가면 될 것이다. 돈이 많이 풀려서 걱정이라면 우선 돈을 줄이면 될 일이지 돈값(금리)을 올릴 일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금리를 ‘미세(상향)조정’해도 가계(대출)나 기업에 별다른 충격을 주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의 금리 상향 전환은 ‘정부가 경기부양 기조에서 안정 기조를 넘어서서 아예 긴축 기조로 가는 모양’이라고 증폭 해석될 소지가 크다. 그때는 아무리 ‘한국경제가 더블딥 가능성이 없다’고 해봐야 한번 돌아선 시장을 되돌리기 힘들어질 것이다. 우리 원래의 성장 코스를 되찾을 때까지는 출구전략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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