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1. 샛강<3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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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내게는 대구 피란학교에서 만나 서울 가서 어른이 될 때까지 인연이 이어진 친구들도 있다. 하나는 영등포에 가서 초등학교의 대부분을 짝패처럼 지낸 영식이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종호다.

종호가 대구 피란 시절 내 짝이 되었는데 그는 아마 이미 잊어버렸겠지만, 그애가 학교에 가져온 방석이 여러가지 색깔의 천을 예쁘게 이어서 정성스럽게 바느질을 한 것이라 교생 여학생들이 감탄을 하던 생각이 난다. 내가 하굣길에 피란살이를 하는 그 애의 집까지 따라간 적이 있었다. 어느 한옥의 문간방이었는데 집 처마 아래 기다란 빈 공간을 부엌으로 쓰고 있었다. 얌전하게 앞치마를 두른 엄마가 풍로에 밥을 지었다. 종호 아버지는 사관학교를 나왔다는데 장교로 일선에서 싸우고 있다고 했다. 피란 시절에 만나고는 헤어졌다가 나중에 중학교에 가서 다시 만나게 되어서 내가 그때 얘기를 했지만 그는 기억에 없는 것 같았다. 그의 아버지는 전쟁 때 전사했다고 한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그 얌전하던 어머니. 종호는 나중에 육사를 갔다가 오랜 군 생활 끝에 장군까지 되었다. 언젠가 동창회 한다고 가깝던 친구들이 하도 보채서-나는 사실 그런 자리가 별로 재미없는데-나갔다가 종호를 보았다. 그도 많이 늙어 있었고 수줍고 내성적으로 보이는 것도 여전했다. 나는 술 몇 잔 하고는 다시 대구의 그 집과 어머니 얘기를 꺼냈더니 어렸을 때처럼 썩 내켜하지는 않으면서도 '이미 돌아가셨다'고 한마디 대답하고는 그만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려서도 사람살이에 관해서 관심이 깊었던 듯싶다.

또 다른 친구 영식이는 몸이 약한 편이었다. 얼굴이 창백하고 비쩍 말랐는데 어디서 났는지 예전 일본 군의 비행사나 탱크병이 썼음직한 가죽 모자를 쓰고 다녔다. 양쪽 볼을 가리는 날개가 달린 그런 모자 말이다. 사변 전에는 나도 겨울에 털실로 짠 그런 모자를 쓰다가 나중에 물들인 미군 털모자를 쓰고 다녔다. 영식이는 꼭 자기처럼 창백하고 약하게 생긴 여자 아이와 손을 잡고 등하교를 했다. 처음에는 그 여자애가 너무 예뻐서 영식이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냥 헤어졌다면 그는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우리 동네 그것도 우리 집 건너편에 이사를 오게 되다니.

나는 아버지나 어머니와 간혹 대구 역전에서부터 시작되는 중앙통을 걷고 있노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오줌이 마려운 것처럼 안달이 나고는 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문화극장 앞에 엄청나게 크게 그려서 걸어놓은 영화 간판들 때문이었다. 영등포에서 나는 어머니를 따라가서 악극도 보고 영화도 보았던 터였다. 타잔도 걸려 있고 톰 소여의 모험도 걸렸다. 그러나 많은 아이가 학교는커녕 구두도 닦고 담배도 팔고 하던 시절이라, 어렸지만 그래도 눈치는 있어서 용돈을 달라고 보채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극장 앞을 지날 때마다 하도 올려다보고 돌아보고 하여 목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와 내가 그 중앙통 거리에서 혼자 월남한 큰삼촌과 딱 마주치게 되었다.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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