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 해로' 의 비결은 일하는 노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내는 뱀해치고 우리 하르방은 쥐해치우다(나는 뱀띠고 우리 남편은 쥐띠요). "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하모리 송을생 할머니는 만 96세(1905년 4월생)란 고령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또렷하게 말했다.

무릎 관절이 아파 걷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곤 TV를 보거나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다섯살 위 1백1세(1900년 3월생)인 남편 이춘관 할아버지는 아직도 기력이 정정해 가게에 들러 담배를 사서 피우곤 한다. 다만 어릴 때 사고로 오른쪽 눈을 잃었고 노화로귀가 들리지 않는다.

李할아버지는 85세까지 일을 한 타고난 어부. 그때까지 청년들과 함께 배를 타고 마라도로 나가 고기를 잡았다. 손이 빨라 새벽부터 4백~5백평 텃밭의 김을 맨뒤 아침식사를 하기도 했다. 宋할머니 역시 환갑을 넘어서까지 바다에서 전복을 따던 해녀였다. 호흡이 길어 한번 물에 들어가면 가장 많은 전복을 따내 으뜸을 의미하는 상군 해녀로 불리기도 했다.

할머니 나이 17세, 할아버지 22세에 결혼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결혼 80주년을 앞두고 있다.

딱 한번 할머니가 병원 신세를 진 적밖에 없다. 아직도 옷을 갈아입거나 대.소변을 가리는 데 지장이 없다. 다만 음식준비나 빨래.목욕을 하는 것이 힘들어 큰아들 태숙(66)씨가 수발을 들고 있다. 건강 비결을 묻자 李할아버지 부부는 제주도의 자리돔회와 감귤 등을 즐겨 먹는다고 말했다.

제주도 사회복지과 이용철 사무관은 "제주의 무공해 환경과 몸에 좋은 해산물 때문인지 제주도의 65세 이상 노인 중 8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8.9%로 전국 최고 수준" 이라고 밝혔다.

실제 애월읍의 김항규씨 등 3형제가 1백세를 넘게 장수한 기록도 제주도에서 나왔다는 것.

현지조사를 한 서울대 의대 박상철 교수는 "기력이 있는 한 자식과 함께 살지 않고 지내는 제주 특유의 풍속이 노인들의 신체적.정신적 활력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李할아버지 부부는 3남2녀를 두었으나 두 명의 자녀가 사망해 현재 2남1녀며 13명의 손자와 20명의 증손자를 두고 있다. 한가위를 앞두고 큰아들 태숙씨는 안타깝기만 하다. 변변한 보청기 하나 살 여유가 없어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제주군=홍혜걸 기자.의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